“'포켓몬 고'? 그 길로 호적 팔 줄 알아"

머니투데이 신혜선 문화부장 2016.07.23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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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피카츄도 증강현실도 모르는 부모 "백문이불여일행" 외치는 아이에게 어떤 조언을?

“'포켓몬 고'? 그 길로 호적 팔 줄 알아"


“엄마, ‘포켓몬 고(GO)’가 뭐야?” “어릴 때 카드 모았던 피카츄 기억나?” “알지.” (이하 포켓몬 고에 관한 짧은 설명과 대화) “왜? 너도 포켓몬 고 하게?” “아니, 학원 선생님께서 포켓몬 고를 말씀하시다가 자기 아이한테 포켓몬 고 하면 그 길로 호적을 파겠다고 말했대.”

시쳇말로 ‘빵’ 터졌다. 왜 아니겠나. 적색 경계경보를 켠 집이 꽤 될 거다. 오늘도 게임에 빠진 아이와 전쟁을 치르는 부모라면 ‘포켓몬 고 경제학’ 따위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큰일 났을 뿐이다. 침대에서 뒹굴면서 스마트폰으로 게임 하는 아이에게 잔소리하거나, 게임방에 숨은 아이를 찾아다니느라 진을 뺀 정도였는데 이제는 ‘집 나간 아이’를 찾아 속초까지 가야 할 판 아닌가. (인도네시아의 한 주에서는 경찰에게 포켓몬 고 금지령을 내렸다니 아이들 집 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전혀 다른 사례도 있다. “휴가지를 속초로 바꾸려고요.” 눈치챘다. “왜요? 포켓몬 잡으러요?” “하하하, 예. 아들이랑 같이 가 볼까 궁리 중입니다.”



이 아버지는 아들과 게임을 함께 즐긴다. 아이는 뇌과학 전공을 꿈꾼다. 공부를 잘한다는 얘기다. 그 아이에게 게임은 놀이와 휴식이다. 용돈을 모아 특정 게임을 즐기는 마니아들의 오프라인 모임에도 간다. 포켓몬 고에도 당연히 열광하고 있다.

적지 않은 부모가 들으면 속 터질 얘기다. “우리 애도 공부만 잘해봐. 아니 적당히만 조절하면 뭐는 못하게 할까.” 하지만 고 1인 딸 얘기는 조금 다르다. “애들이 비정상적으로 뭐에 빠질 땐 다른 문제가 있어서일걸. 아니면 진짜 좋아하거나. 소리만 지르고 못하게 한다고 되겠어?” 아이들 눈엔 어른들이 비정상이다.

슬쩍 경계심을 보였다. “아무 말 없이 기차나 버스 타면 안 되는 거 알지? 넌 미성년자야. 허락받고 보호자랑 같이 가야 한다. 정식 서비스가 되면….”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우리는 하고 놀 게 없어 취미가 독서였던 세대다. 골목과 뒷산이 놀이터였다. 노는 게 지겹기까지 했다. 놀다 놀다 지쳐서 ‘심심해’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아이들은 ‘바뻐 죽겠어’다.

공부를, 어려운 공부를 너무 많이 한다. 재미있는 건 더 많아졌는데 못하게 하는 건 그만큼 많다. 놀 시간을 없게 만드니 안달이 날만도 하다. 독서만 해도 그렇다. 직접 해보면 될 일이 수두룩하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과 교훈이 와 닿을 리 없다.
스마트폰에 ‘모두의 마블’이란 게임 앱을 깔았다. 일주일만 ‘출석’해달라는 딸의 부탁 때문이다. ‘게임 도사’인 남편이 거든다. “마지막 기회야. 지금 아니면 딸이랑 게임 해 볼 기회는 없을걸.”

‘놀면서 배우는’ 의미가 무색한 방학이다. 딸이 친구들과 속초 간다면 말릴 수 있을까. ‘미성년자끼리 여행의 위험성’이란 원칙으로 대안을 만들겠지만, 딸을 위해 속초행을 결정할 수 있을까. 실은 앞의 아버지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게임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아들과 같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여서다.

그래, 포켓몬 고 공부라도 하자. 피카츄 잡으러 속초 갈 것을 미리 걱정하면서 ‘호적파기 협박’을 하기 전에 증강현실, 가상현실 그리고 닌텐도의 부활과 이야기가 있는 콘텐츠의 위력에 대해 아이에게 들려줄 얘깃거리를 준비해야겠다. 지금 사회에선 아이지만, 미래 사회에선 그들이 우리를 대신할 주인이니 그들의 호기심을 죽이기만 해서는 안 될 일 아닌가.

이런, 그래도 딸의 이의제기가 들어오면 난감한 일이다. “엄마, 증강현실? 됐고! 백문이불여일견, 불여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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