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 코마네치가 1976년 7월 18일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2단 평행봉 예선서 올림픽 사상 첫 10점 만점을 달성했다. 당시 전광판엔 9.99밖에 표시할수 없어 점수는 1.00으로 표시됐다./사진=위키피디아
40년 전 오늘(1976년 7월 18일)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장, 키 153cm 몸무게 39kg 가냘픈 체구의 코마네치가 2단 평행봉 앞에 섰다. 1분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고난이도의 기술이 실수없이 이어졌다.
경기장의 모든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1.00의 점수에 화가 난 코치가 항의하려 하자 한 심사위원이 열 손가락을 펴며 소리쳤다. "1점이 아니라 10점입니다. 만점입니다." 관중들이 다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코마네치의 10점 만점 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경기 이후 단체전과 다른 종목의 예선과 본선을 거치면서 6차례의 만점을 더 기록한다. 그는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코마네치의 활약에 시사잡지 타임은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요정”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코마네치가 유명해질수록 기계체조도 인기 스포츠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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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마네치 이후 전세계적으로 기계체조 선수 연령이 낮아지면서 아동 학대에 대한 논란이 일게되자 국제체조연맹은 1981년 국제 대회에 출전 최저 연령을 14세에서 15세로 올린다. 이어 1998년엔 다시 최저 연령을 16세로 올린다. 코마네치 이후 체조경기에서 10점 만점이 잇따르자 2006년부터는 채점 방식을 바꾸게 된다.
코마네치는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차우세스쿠 독재 정권의 특별관리 및 체제 선전활동 등에 이용당하다 결국 1989년 미국으로 망명한다. 미국에서의 생활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기를 당하면서 저질 행사에 끌려다녔고, 수입은 갈취당했다. 미국 언론도 코마네치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러다 1984년 LA 올림픽 체조 2관왕 출신인 체조 스타 바트 코너가 그의 버팀목이 됐다. 코마네치는 1996년 코너와 결혼했고, 이후 코너와 체조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등 체조와 관련된 각종 활동을 하면서 자선사업에도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