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1%를 향해 안간힘 쓰는 당신에게

머니투데이 신혜선 문화부장 2016.07.1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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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1%를 향해 안간힘 쓰는 당신에게


삼복이 시작도 안 됐는데 ‘개나 소나’도 아니고 ‘개돼지’ 논란이 한창이다. 졸지에 대한민국 국민의 99%가 ‘먹고살게만 해주면 되는’ 개돼지가 됐다. 기사를 처음 접한 후 든 생각은 ‘난리가 나겠군’이었다. 하지만 곧 그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언 주인공의 신분은 공무원. 그는 자신이 개돼지로 취급하는 그 99%가 내는 세금으로 연명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했다. ‘녹’을 받는 자세도 그렇지만 계산은 정확해야 하지 않나.



그의 이력을 좀 더 살폈다. 경남 ‘명문 사립고’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대학 내 서열 2, 3위쯤에 해당하는 학교를 졸업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이 됐다. 시쳇말로 ‘잘 나가는’ 모습이다. 청와대 파견 근무도 하고, 장관 비서관도 했다. 해외 파견 기회를 얻어 박사도 수료하고, 고용휴직 기간에는 해외 유명 기관에서 근무했다.

‘신분제를 인정하고, 공고히 하자.’ 실은 다음 말에 더 꽂혔다. “당신은 1%와 99% 중 어디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 대목에서다.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 건. 그리 겸손(?)할 건 무엔지. 그냥 “나는 1%다”라고 말하지. 그는 1%에 들지 못해서 거기에 들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던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진학한 후 행정고시를 통과해 고위 공무원이 되면 내 신분은 상승하고, 더 열심히 하면 상위 1%에 들 수 있다’는 꿈을 꾼 청년.

국민 중에는 똑똑한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고, 아픈 자도 있다. 아니 금수보다 못한 종자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 일을 수행하는 공무원은 그들을 보듬어야 한다. 정부가 필요한 이유는 그래서다. 그건 싸구려 동정이 아니라 책임이다.

‘보보스’(부르조아+보헤미안)라는 조어를 만든 데이비드 브룩스는 ‘인간의 품격’이라는 책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이기적인 인간상을 비판하다.


지금 사회는 신분 상승을 위한 경력을 쌓기 위해 매진하는 모습을 충실한 본능으로 추켜세운다. 자기를 과장되게 내세우고 자랑하기 급급한 인간형이 훌륭하다며 벤치마킹할 것을 권한다. 사리 분별력을 갖추고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하찮게 여긴다.

책에 나오는 9명의 인물의 삶은 다 다르지만 이를 극복한 이들이다. 모두가 나락에 빠진 경험이 있고 거기서 겸손을 배웠다. 성취만으로 만족감을 얻지 않고, 도덕적 기쁨을 경험한다.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을 깨고, 내적 성숙을 중요하게 여긴다.

책의 서문과 마지막 장의 제목은 너무도 교과서적이지만 버릴 수 없다. ‘삶이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투쟁이다’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지인의 자녀가 행정고시에 도전한다. 너는 왜 공무원이 되려느냐? 는 부친의 질문에 이 청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습니다”고 말했단다. “자식 잘 키웠네”, “젊은 친구 통이 크다”며 모두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공무원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이 공무원의 ‘실패’를 보고 반면 교사할 일은 기자 앞에서 입조심이 아니다.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 과정’이라는 평범한 진리, 더불어 최소한의 직업윤리다.

상위 1%에 들려 몸부림하는 이들에게서 배울 건 노력을 가장한 욕심이다. 우리의 스승은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개돼지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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