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벌거벗은 브렉시트…풀몬티 폴리티션

머니투데이 배성민 부장 2016.06.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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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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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영국 셰필드의 주민(정확히는 실업자)들은 깊은 한숨 속에서도 아주 가끔 환호했다. 영화 속에서지만 옷을 하나씩 벗어야만 하는 절박감에서도 말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강경책과 제조업 위축 등으로 실업자가 쏟아졌던 대처 시대의 음울함을 유쾌하게 그렸던 풀몬티라는 코미디영화가 있었다. 직장을 잃게 된 철강공장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스트립쇼를 시작한다는 내용으로도 기억된다. 영화의 배경은 80년대 철강공장이 문을 닫으며 퇴락한 도시 영국 셰필드다.



그로부터 30년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광풍 속에 셰필드 주민들은 꼭같이 환호했다.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돼 ‘이겼다’고 외쳤지만 이내 주변 시선이 말할 수 없이 차갑다는걸 느꼈다. 셰필드는 국민투표 전 한 여론조사에서 59.5%가 잔류를 택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예상을 깨고 51%가 탈퇴를 원했다.

일단 현재 이번 선거 결과의 가장 큰 원인은 영국민의 '반(反)이민' 정서와 빈부격차에 따른 박탈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U 결성으로 인한 이민자 증가가 안전과 일자리, 복지를 위협한다는 정서가 브렉시트 지지파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선거구 분석에 따르면 저소득·저학력층이 브렉시트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세계화의 깃발이 올려진 세계화의 발상지 영국에는 두 거인이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 9월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는 스위스 취리히 연설에서“유럽 대륙이 평화와 안전, 자유 속에서 살 수 있게 유럽합중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늘날 EU의 태동이었다. 마거릿 대처 총리도 1970 ~ 1980년대 신자유주의와 규제 완화를 통해 지구촌의 자금을 끌어모아 금융산업을 새롭게 일궜고 세계화의 기수로 영국의 오늘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늘이 있었다. 대처는 '영국병'을 고쳤다지만 이 과정에서 소외되고 좌절한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그들이 브렉시트라는 의도치 않은 행동으로 반세계화의 선봉에 선 것이다. 영국병은 감기였는데 항암제 수준의 무자비한 처방이 이뤄진데 따른 반작용일까.

지금까지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민의 투표행태에 대해서는 비난이 압도적이다. 자국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 발산된 결과물로 무책임의 극치라는 것이 주된 주장이다. 하지만 비난의 포커스는 영국인들보다 집권이나 영향력 확대 같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들을 호도한 영국 정치인들에게 맞춰져야 맞다.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선택하게 만들었던 EU 탈퇴파 정치인들의 허풍은 하나둘 확인되고 있다. EU를 탈퇴하면 영국이 EU에 내는 분담금이 건강보험서비스에 투자될 것이란 공약은 이미 공약(空約)(나이젤 파라지 영국독립당(UKIP) 대표는 ‘탈퇴 캠프의 실수’라고 고백)으로 드러났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투표 전에는 “이민자의 유입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브렉시트 결정 이후로는 영국민의 자유로운 왕래(이민자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자유이동이 전제)를 강조하는 모순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브렉시트가 되고나서도 이민이 늘고 복지혜택은 여전히 낮아질 수 있다는 거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설익은 선거공약으로 내세우며 오늘의 혼란을 자초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성급함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비난은 영국인 전체를 향한다. 브렉시트를 이끌어낸 특히 찬성표를 던진 영국인들은 이미 발가벗겨져 있는지 모른다. 1년간 벌 돈의 네배가 이틀만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영국 유권자수는 1741만742명이었다. 그들의 표값은 어느 정도였을까. 거칠게 계산해보면 1표당 2억1020만원(17만4800달러)쯤 된다. 영국민 1인당 국민소득 4만3770달러(2015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의 4배다.

1인당 표값은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이후 글로벌 주식시장에서 이틀 만에 3조 달러(약 3500조원)가 날아갔다고 한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를 참조한 수치다. 찬성표를 던진 그들은 자신의 표값을 알았을까.

영화 <풀몬티>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영화 <풀몬티>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
허공 중에 날아다니는 돈 아래 벌거벗겨진 영국인들 뒤에는 일자리를 앗아간 불황과 경영을 제대로 못한 CEO, 잘못된 아젠다로 무중력의 공간에 국민들을 내던진 정치인들이 있었다. ‘몽땅 벗는다’는 뜻의 속어, 풀몬티. 브렉시트 뒤에 숨은 영국 정치인들의 그림자와 말의 성찬을 벗겨내고 그들을 몽땅 벗겨보는 것이 우선이다. 어디 영국 뿐이랴. 풀몬티 폴리티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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