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국민투표, 브렉시트 전철 밟나…'투표의 역설'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2016.07.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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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생각 다른느낌]국민투표 결과는 합리적인 선택을 보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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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일부 정치권을 중심으로 현행 대통령제에 대한 개헌 논의가 제기되면서 국민투표 시기를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여부를 묻는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이후 민심이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자 ‘국민투표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6월23일 영국의 브렉시트(Brexit)가 국민투표에 의해 찬성으로 결정됐다. 그동안 설마하면서 브렉시트가 부결되기를 바란 사람들에게는 적잖이 당혹스런 결과였다. 이후 브렉시트 찬반 재투표를 하자는 청원이 4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럴거면 아예 국민투표를 하질 말았어야지 장기판도 아니고 이제 와서 무르자고 하는 모양새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결국 브렉시트와 같이 중요한 사안을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새삼 의구심을 들게 한다. 안타깝게도 국민투표가 민주적인 정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 최선의 선택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자인 마르퀴 드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는 다수결 투표로 결정한 내용이 집단 전체가 생각한 내용과 달라지는 현상을 ‘투표의 역설’이라 불렀다. 이는 민주주의 투표제의 맹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1972년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우(Kenneth Arrow)는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적 정당성을 보장할지는 몰라도 합리적 의사결정이 도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특히 투표자들의 선호가 비슷하면 투표의 역설이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의 경우엔 투표의 역설이 발생하기 쉽다.

따라서 국민들이 합의하기 쉬운 경우에는 국민투표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으나 서로 선호가 달라 합의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민주주의 원칙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걸 시사한다.


그럼에도 2013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유럽연합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함으로써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신세가 됐다. 그 결과 탈퇴 51.9%, 잔류 48.1%의 박빙의 차이로 브렉시트가 결정됐다.

그동안 유럽대륙에서 넘어온 이민자와 난민들로 인한 복지부담과 자국민들의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반감, 매년 부담하는 22조원의 유럽연합 재정부담금 등의 이유를 들어 찬성파가 국가중대사를 결정해버렸다.



브렉시트 결정 후 영국 독립당 나이젤 페라지 당수가 “유럽연합은 죽었다”며 두 손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언제 “영국이 죽었다”는 말이 나올런지 모를 일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다른 나라들의 연쇄탈퇴를 가져와 유럽연합이 붕괴될 거라는 우려도 있지만 그 전에 스코틀랜드나 북아일랜드의 영연방 탈퇴가 먼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추측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브렉시트가 향후 금융과 실물 경제에 미칠 영향은 두고 봐야 알겠지만 캐머런 총리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시작된 국민투표가 성공적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영국은 현재 젋은층의 잔류와 노년층의 탈퇴 지지,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의 잔류와 잉글랜드·웨일즈의 탈퇴 지지로 세대·지역간 찬반이 확연히 갈리고 있어 갈등을 봉합하고 수긍하는 후처리가 필요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영국의 국가경제적인 이해득실이 미지수다. 이런 중요한 경제정책은 개인의 선호도나 이익보다 국가전체의 이익을 따져야 한다. 그러나 일부의 불만이 크다는 이유로 정치적 공약에 의해 국민투표를 하다보니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대로 평가조차 못했고 영국 국민은 실제 손익이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계산하지 않은 채 표를 던지고 말았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책의 찬반 여부를 다수결에 의한다면 국민투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가 민주적 절차성은 확보했어도 합리적 선택을 보장하지 않기에 일단 주사위를 던지고 운에 맡기려는 행위는 위험천만일 수 있다.

우리나라 경우에도 개헌이나 국가 중요정책에 대해 국민의 진정한 의사를 묻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정치권력을 합리화하거나 국민의 찬·반을 강요하는 도구로 국민투표나 주민투표가 이용된 전례가 있다.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놓고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며,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정책에 반대해 주민투표를 제안하고 무상급식 투표율이 개표선에 미달하면 사퇴하겠다는 무리수를 둔 결과 시장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렇게 국민투표는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제적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합리적 선택을 보장하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 늘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헌법 개정의 경우 국민투표 이전에 우선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발의해 국회 재적의원 3분의2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 뒤에 비로소 국민투표에 붙이게 되고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과반수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그러나 대통령제에 대한 개헌은 브렉시트와 같이 국민들의 선호가 크게 갈리는 사안이라 '투표의 역설'에 빠지기 쉽고 또 브렉시트와 같이 박빙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럴 경우 과연 49%에 가까운 투표에 진 국민들이 그 결과에 순순히 승복할지 장담할 수 없다. 영국처럼 재투표하자는 볼썽사나운 일을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따라서 브렉시트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개헌 논의와 더불어 국민투표가 합리적인 선택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단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 국민투표 결과에 무조건 수긍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개헌 국민투표 후 국론이 더 분열되고 우와좌왕 혼란에 빠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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