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백혈병으로 숨진 판사…대법 "공무상 재해 맞다"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16.06.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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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스1서울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스1


과로에 시달리다 급성 백혈병에 걸려 숨진 판사에 대해 대법원은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8일 2013년 숨진 이우재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48·연수원 20기)의 유족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취소하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장판사의 사망과 과로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장판사는 급성 백혈병 진단 후 4일 만에 사망했다"며 "급성 백혈병 환자의 일반적인 생존기간을 고려할 때 이 전 부장판사는 단기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직접 사인이 된 패혈증의 원인이 급성 백혈병뿐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진료기록 감정의도 과로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낮아진 상태에서 감염병이 발병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 전 부장판사는 2013년 1월6일 새벽 자택에서 심한 다리 통증을 호소해 응급실로 이송됐다. 의사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과 함께 패혈증 진단을 내렸다. 이 전 부장판사는 즉시 입원돼 치료를 받았지만 같은 달 10일 패혈성 쇼크로 숨졌다.



이 전 부장판사는 평일 대부분 오전 7~8시 전 출근해 오후 5~7시까지 근무했다. 퇴근 후나 주말에도 재판 업무와 공식적인 집필 업무를 수행했다. 평소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듣던 이 전 부장판사는 민사집행법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연구에도 몰두했다.

특히 이 전 부장판사가 숨지기 전 3개월 동안 심리한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 같은 법원의 다른 합의재판부들보다 많은 사건을 처리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부장판사의 유족은 공단에 유족보상금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공단은 "과로와 백혈병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이에 유족은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이 전 부장판사가 숨진 것은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사망 당시 이 전 부장판사는 백혈병에 패혈증과 감염병이 발병한 것으로 파악됐다. 의료기관은 무엇이 먼저 발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전 부장판사의 면역력이 매우 나빴기 때문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는 소견을 제출했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업무 스트레스와 과로가 이 전 부장판사의 사망 요인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 전 부장판사가 수행한 업무량은 그 자체로 많을 뿐더러 상당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반했을 것"이라며 "과로와 스트레스가 감염병을 유발했거나 급속히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단이 이 전 부장판사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고 내린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이 전 부장판사의 사망은 공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공단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할 의무도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과로나 스트레스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병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의학 소견"이라며 "이들이 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증거는 아직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이 전 부장판사는 숨지기 전 2주 동안 2차례 국내외 여행을 다녀오고 그 사이 재판을 진행하는 등 업무를 수행했다"며 "이 전 판사의 업무가 상당한 과로나 스트레스를 유발했거나 백혈병·감염병 악화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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