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마이클 잭슨의 공연 모습./사진=위키피디아
그는 5살에 가수로 데뷔해 미국 음악계, 아니 전세계 음악계에 흑인 가수로는 상상하지 못한 영향력을 끼쳤다. 7년 전 오늘(2009년 6월25일) '팝의 황제'로 불린 마이클 잭슨이 사망했다.
'잭슨5'로 불린 이 그룹은 미국에서 꽤 잘 나갔다. 처음으로 발매된 싱글앨범이 빌보드차트 100에 진입, 모두 1위를 차지했다. 'I'll Be There' 'I Want You Back' 등이 대표적이다.
21살이 되던 해인 1979년 마이클 잭슨은 드디어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그가 제작자 퀸시존스와 함께 만든 앨범 'Off the Wall'은 큰 성공을 거둔다. 빌보드 200에서 3위, 전세계적으로 앨범 2000만장이 팔렸다. 이 앨범은 후에 음악성을 인정받아 2008년에는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1997년 프랑스 칸 영화제에 참석한 마이클 잭슨. /사진 제공=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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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바로 1982년 발매한 'Thriller'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대표곡인 'Billy Jean', 'Thriller', 'Beat it'가 모두 이 앨범에 수록됐다. 이 앨범은 상상을 초월한 인기를 누린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음악성과 재능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6500만장 이상 팔리면서 놀라운 기록을 세웠고, 37주 동안 빌보드차트 1위를 기록했다. 비틀스 이후 19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음반시장이 좁았던 우리나라에서도 5만장 넘게 팔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이 선보인 발을 떼지 않고 뒷걸음을 치는 춤동작인 '문워크'는 현재까지도 '고전'으로 남아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마이클 잭슨의 사생활은 상당히 불우했다. 그는 항상 악의적 소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의 외모가 문제가 됐다. 까맣던 그의 피부가 전성기 때부터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 것. 그는 전세계 인구 100명 중 1명이 겪는 백반증을 앓았다.
얼마 후 그는 하얘진 피부 그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가 흑인을 싫어하고 백인을 동경해서 수술을 했으며 이 수술 때문에 곧 사망할 것이라는 악의적 루머를 퍼뜨리기도 했다.
이후에는 아동 성추행 사건에 2번이나 휘말렸다. 그가 주변 어려운 아이들을 돕다가 아이 부모로부터 성추행 신고를 당한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이 사건으로 많은 팬을 잃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된다.
마이클 잭슨 사망 후 팬들의 추모열기. /사진 제공=위키피디아
최근 경찰은 2003년 성추행 사건 수사 당시 마이클 잭슨 집에서 다량의 아동성애와 관련한 비디오와 서적을 발견했다고 폭로해 파장이 일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 유가족들은 "근거없는 보도를 그만둬라. 이정도 했으면 됐다"며 격앙된 반응을 내놨다.
팬들 중 일부는 아직까지 마이클 잭슨이 살아 있다며 그 근거사진들을 SNS에서 공유하기도 한다.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