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을 빼고는 모두 중고등학교 때 봤던 사전이니 낡았다. 마지막 들춘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으니, 버려야 할 물건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한데 괜히 가진 책. '책'이라고 쓰고 나니 드는 생각 하나 '사전을 책으로 생각한 적이 있던가?'
'비슷한 말 꾸러미 사전'은 사전은 사전이되 색다른 사전이다. 딱딱하거나 비닐이 싸인 표지와도 다르고 종이재질 역시 습자지 류가 아닌 일반 단행본 책과 같다. 무엇보다 기존 사전의 양식과 서술 방식이 다르다. 찬찬히 읽으니 오히려 단정한 문장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는 산문 느낌이다.
한 꾸러미에 담은 '놀라다·까무러치다·두근거리다·설레다'는 비슷한 말이다. 하지만 이처럼 쓰임새가 다르다. 누군가가 예의를 갖춰 그 차이를 조근조근 설명하는 듯하지 않나. 설명문 뒤에는 각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한 예문이 나온다.
이런 문장을 읽으니 '~한 모습', '~하는 행위' 형태의 설명과 '(비)슷한 말'이나 혹은 '(반)댓말'이라는 약어로 몇 개 단어가 나열되고, '~ 하다'라는 식의 예문으로 설명된 깨알 같은 글씨의 사전이 왜 안 읽혔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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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쓰는 일 없는 한자말이 너무 많다. 일본 영어와 일본 말이 너무 많다. 외국사람 이름과 외국 도시 이름, 외국 문학책 이름도 많다. 한국말 풀이가 엉성하다. 아무리 읽어도 슬기롭게 쓰는 길을 배우기는 어렵다. 차라리 내가 국어사전을 새로 써도 훨씬 낫겠다."
저자가 고등학교 때 '국어사전 통독'을 두 차례 하면서 느낀 문제의식이다. 저자는 25년 만에야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1100개 단어를 264개 꾸러미에 담았다. 그리고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라, 적절하게 사용하면 그 맛과 멋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음을 반듯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그는 사전을 내기까지 한 우물을 팠다. "1994년부터 한국말을 살찌우는 길을 스스로 찾아서 배웠다." 그렇게 20여 년 동안 우리말을 공부하면서, 보리 국어사전을 편집하는 일을 하고, 이오덕 선생의 유고와 일기를 정리하고, 우리말을 정리했다.
그의 말을 숲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유는 전남 고흥에 사진책도서관+한국말사전 배움터 '숲노래'를 꾸리며 살고 있어서다.
저자는 책에 대해 "말·넋·삶을 새롭게 가꾸면서 사랑스레 살찌우는 길을 기쁘게 생각하자는 살림살이를 담고자 했다"고 말한다. 사전을 만들면서 '생각하는 기쁨'을 살리는 말을 고민한 저자의 마음이 귀하게 다가온다.
'벌써-이미-어느새
개운하다-시원하다-후련하다
고즈넉하다-호젓하다-한갓지다
뜨뜻하다-미지근하다-미적지근하다-뜨뜻미지근하다
심심하다1- 심심하다2- 따분하다-재미없다
이따금-가끔-더러-때로-때로는-때때로
성가시다-귀찮다-번거롭다
맑다-깨끗하다-정갈하다-해맑다-티없다-해사하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멋지게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라 해도 이런 한글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고 그 맛을 살려 번역하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
◇새로 쓰는 비슷한 말 꾸러미 사전=최종규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496쪽/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