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MIT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영 연구를 하고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저자 김형태 교수는 예술에서 경영의 기운과 흐름을 읽는다. 예술의 동력은 창의적이니 경영도 창의적으로 하라는 식의 단순 논법을 전파하지 않고, 분야가 지닌 본질과 속성을 제대로 꿰뚫고 이를 과학적으로 비교하고 대입한다. 경영 전문가가 예술의 속성을 읽는 눈은 예리하고 탁월하다.
하지만 그림이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 즉 ‘색을 만들어내는 방법’에서의 독창성은 터너와 로스코가 닮았다. 삼성전자를 애플에 비교하는 건 제조회사라는 측면에서 비슷하지만, 핵심경쟁력에 초점을 맞춰 비교하면 삼성은 아마존과 닮았다. 반도체기술을 주도하는 삼성과 빠른 배송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아마존은 ‘속도’라는 가치를 핵심으로 삼기 때문이다.
식물학에선 감자, 고구마 같은 땅속 줄기식물을 리좀형이라 부른다. 수목형과 달리,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고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경로가 사라져도 생존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뿌리 일부가 파괴되면 식물 전체가 죽는 위험에서 리좀형 식물은 예외다.
세계 네트워크 장비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시스코는 리좀형 기업이다. 1년에 평균 6개 회사를 인수한 시스코는 다양성과 이질성을 인정하는 문화 기업으로 정착했다. 입사와 퇴사를 인터넷 접속과 분리처럼 생각하는 유연성은 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최고의 미덕으로 자리잡았다. 근원적 형태를 넘어 줄기세포처럼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는 형태인 ‘원형력’이 세 번째 힘이다. 그림에선 세잔, 조각에선 헨리 무어, 건축에선 르코르뷔지에가 각각 원형을 포착해 작품화한 대가들로 평가받는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잡아두려는 힘인 점성, 움직이려는 힘인 관성. 두 힘의 상대적 크기에 따라 모양은 결정된다. 모기향이나 담배 연기가 처음엔 직선으로 올라가다 나선형 모양으로 바뀌는 건 점성에서 관성의 힘으로 움직이기 때문. 아르누보의 대표 화가 알폰스 무하의 작품은 굴곡진 몸매를 앞세운 ‘곡선’이 특징이다. 고전주의 회화가 대부분 직선적 흐름을 유지했다면, 무아는 나선형을 통해 살아있음을 시각으로 표현했다. 네 번째 힘인 ‘생명력’은 모두가 평균으로 수렴되는 점성이 아닌, 불확실한 환경에서 치고 나가는 관성의 힘에서 나온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마지막 법칙 ‘중력-반중력’은 충돌과 균형에 관한 감각의 문제로 수렴된다. 아인슈타인은 뉴턴과 달리 ‘휘어진 공간 구조’를 중력으로 봤다. 휘어진 이불 위에 탁구공이 움푹 휜 공간 속으로 빠져들 듯, 곡률이 물체의 방향과 궤적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카푸어가 ‘비움’(void)이란 주제로 내세운 작품에는 아인슈타인의 우주공간처럼 오목하게 휘어진 구조의 공간이 드러난다. 세계 경제는 미국이라는 움푹 휘어진 공간으로 몰린다. 한국도 중국도 미국 국채를 쉽게 팔아버릴 수 없고 투자를 계속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흐가 단일 소실점을 통해 그림 전체의 통일성을 강조했듯,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이란 목표를 단일 소실점으로 삼아 경제라는 화폭의 중심을 잡는 것이다.
저자는 “상상을 초월해 판을 뒤집어버리는 예술 거장들의 해법은 예술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정의에서 나온다”며 “저성장, 저금리, 고부채, 고실업의 시대에 경제도 새로운 질문을 통해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김형태 지음. 문학동네 펴냄. 416쪽/1만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