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6.06.25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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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여행지의 문화나 풍습은 미리 챙기자

편집자주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터키 리제의 차밭. 산마다 개간해서 차 농사를 짓고 있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터키 리제의 차밭. 산마다 개간해서 차 농사를 짓고 있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는 경구가 있다. 로마가 번창하던 시절의 속담이란 말도 있고, 340년경 성(聖) 어거스틴(St. Augustine)의 편지에 나오는 대목이라는 말도 있다. 밀란의 주교에게 로마로 전근 가면 로마식대로 하라는 충고였다는 것이다. 교훈이 되는 말은 세월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 특히 여행자들에게는 이 한 줄의 충고가 가이드북보다 더 값질 때가 있다.

터키를 여행하던 중, 흑해의 리제라는 곳에 갔을 때의 일이다. 리제는 차(茶)의 주생산지다. 이 지역에서 터키인들이 즐겨 마시는 ‘차이’ 원료를 60% 이상 생산한다. 도시를 벗어나 어느 산골짜기 마을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차밭에서 일을 하다 새참을 먹던 농부들이 나를 불렀다. 차이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는 것이었다. 무슬림들은 손님을 잘 대접하면 알라신이 기뻐한다고 믿는다. 지나가는 나그네도 그냥 보내지 않는다.



농부들 틈에 섞여 빵과 차를 먹는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함께 식사를 하던 여성들이 내가 합석하면서 자리를 비우는 것이었다. 차를 낸 다음 돌아올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농기구를 넣어두는 창고에서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사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분들은 왜 함께 드시지 않고요?” 그 마을의 여성들은 낯선 남자와 한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대답이었다. 내가 커다란 카메라를 갖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들의 율법으로는 여성들이 타인에게 사진을 찍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좀 특별할 정도의 원리주의자들이었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스스럼없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는 여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원칙이 그렇다면 반드시 지켜줘야 한다. 즉, 여성들에게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면 안 된다. 여전히 종교적 율법이 국가의 법보다 우선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지키고자 하는 종교적 가치가 곧 ‘로마법’이다.



암스테르담 시내 공원에는 수백 대씩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암스테르담 시내 공원에는 수백 대씩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도 그곳 사람들의 ‘법’ 때문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 암스테르담은 운하의 도시로 잘 알려졌지만 내게는 자전거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남아있다. 내 기억 속에 먼저 각인된 게 자전거였기 때문이다.

시내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무척 화가 난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며 마구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함께 걷던 유럽인 친구가 얼른 나를 끌어당겼다.

“이게 뭐야? 자전거가 왜 저렇게 무서워?”


“네가 잘못한 거야. 여기서는 자전거가 왕이야.”

그러고 보니 자전거가 그려진 전용도로 위로 걸어가고 있었다. 보행자는 절대 그곳으로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탓이었다. 국내에서 하던 습관대로 편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자동차나 보행자보다 자전거가 우선이다. 길을 걷다 보면 길이 좁아지거나 공사를 하느라고 느닷없이 인도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어느 경우라도 자전거 길이 줄어드는 법은 없다. 그런 나라에서 이방인이 질서를 깼으니 욕을 먹어도 싼 일이었다.

암스테르담은 자전거의 천국이다. 기어나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도 시내를 씽씽 달린다. 급경사가 없는 지형에, 널찍한 전용도로까지 있으니 위험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차를 세울 주차장은 없어도 자전거 보관소는 곳곳에 마련돼 있다. 심지어 공원 또는 운하에 정박해놓은 배 위에도 자전거 보관소가 있다. 잘못 들인 습관은 정말 무서웠다. 무심코 걷다 보면 어느덧 자전거 길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었다. 암스테르담에 머무는 내내 길에서 혼나는 게 일이었다.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도 분명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는데, 평소에 별 신경 쓰지 않고 걸어 다닌 게 문제였다.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 길이 곧 ‘로마법’이었다. 유능한 여행자일수록 여행지의 문화나 풍습을 미리 챙긴다. 빨리 동화되는 만큼 여행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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