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리제의 차밭. 산마다 개간해서 차 농사를 짓고 있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터키를 여행하던 중, 흑해의 리제라는 곳에 갔을 때의 일이다. 리제는 차(茶)의 주생산지다. 이 지역에서 터키인들이 즐겨 마시는 ‘차이’ 원료를 60% 이상 생산한다. 도시를 벗어나 어느 산골짜기 마을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차밭에서 일을 하다 새참을 먹던 농부들이 나를 불렀다. 차이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는 것이었다. 무슬림들은 손님을 잘 대접하면 알라신이 기뻐한다고 믿는다. 지나가는 나그네도 그냥 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원칙이 그렇다면 반드시 지켜줘야 한다. 즉, 여성들에게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면 안 된다. 여전히 종교적 율법이 국가의 법보다 우선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지키고자 하는 종교적 가치가 곧 ‘로마법’이다.
암스테르담 시내 공원에는 수백 대씩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시내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무척 화가 난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며 마구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함께 걷던 유럽인 친구가 얼른 나를 끌어당겼다.
“이게 뭐야? 자전거가 왜 저렇게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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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잘못한 거야. 여기서는 자전거가 왕이야.”
그러고 보니 자전거가 그려진 전용도로 위로 걸어가고 있었다. 보행자는 절대 그곳으로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탓이었다. 국내에서 하던 습관대로 편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자동차나 보행자보다 자전거가 우선이다. 길을 걷다 보면 길이 좁아지거나 공사를 하느라고 느닷없이 인도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어느 경우라도 자전거 길이 줄어드는 법은 없다. 그런 나라에서 이방인이 질서를 깼으니 욕을 먹어도 싼 일이었다.
암스테르담은 자전거의 천국이다. 기어나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도 시내를 씽씽 달린다. 급경사가 없는 지형에, 널찍한 전용도로까지 있으니 위험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차를 세울 주차장은 없어도 자전거 보관소는 곳곳에 마련돼 있다. 심지어 공원 또는 운하에 정박해놓은 배 위에도 자전거 보관소가 있다. 잘못 들인 습관은 정말 무서웠다. 무심코 걷다 보면 어느덧 자전거 길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었다. 암스테르담에 머무는 내내 길에서 혼나는 게 일이었다.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도 분명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는데, 평소에 별 신경 쓰지 않고 걸어 다닌 게 문제였다.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 길이 곧 ‘로마법’이었다. 유능한 여행자일수록 여행지의 문화나 풍습을 미리 챙긴다. 빨리 동화되는 만큼 여행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