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기만해도 월급받는 '연공서열' 없애야 선진국된다"

머니투데이 특별취재팀= 정진우, 유엄식, 정혜윤 2016.06.20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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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20년 대한민국, 선진국의 길]<2>-③[인터뷰]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수출 세계 6위, GDP 규모 세계 11위 등 경제규모나 지표로 보면 그렇다. 이미 20년 전 선진국 클럽으로 분류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횡행하는 시대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영역에서 과연 선진국일까라는 물음에 우리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는 창간 15주년을 맞이해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앞으로 20년 동안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색해 보기로 했다.

2016.06.16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장, 전 기획재정부 장관 창간기획 인터뷰2016.06.16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장, 전 기획재정부 장관 창간기획 인터뷰


“국민 역량이 부족한데, 겉에서만 그럴 듯해 보이는 선진국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것입니다. 실력이 안되면서 선진국 취급을 받길 원하는 건 요행을 바라는 것이죠.”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진정한 선진국이 될까를 연구하는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각종 시스템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 때문에, 정권을 뛰어넘는 장기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가장 시급한 건 교육제도라고 단언했다. 교육이 잘못되니 선진국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는 “경제 외형만 성장해선 안되고, 국민의 의식이 바뀌고 역량이 높아져야 한다”며 “국민의 삶이 편안하고,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으로부터 그가 꿈꾸는 ‘선진 대한민국’을 들어봤다.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선진국에 대해 정의를 한다면.
▶ 국민의 삶이 편안한 나라다. 또 이웃 국가로부터 존중받는 그런 나라다. 예를 들어 독일이나 유럽 북구에 있는 나라들이다. 기본적인 경제 수준 유지하고, 대기의 질이 좋고 안전한 주거환경이 보장돼야한다. 국민들이 기초질서를 확실히 지키고 약속을 파기하지 않고, 거짓말하면 매장되는 공동체 규범이 확립돼야한다.

- 선진국 경제의 특징도 궁금하다.
▶ 선진 경제로 가려면 시장에서 정부의 입김이 줄어야 한다. 민간의 역량이 강화되고 자율성도 보장돼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처럼 정부의 영향력이 세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선진국일수록 경제활동의 자유도가 높다. 선진국들은 시장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높은 길’(High road, 하이로드)로 푼다. 높은 길이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기부와 봉사 등 민간에서 작동하는 여러 시스템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후진국들은 ‘낮은 길’(Low road, 로우로드)이다. 정부에서 규제하고, 정부가 좌지우지한다.



- 예를 들면
▶ 대형마트 규제가 대표적이다.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를 한달에 두번(보통 둘째, 넷째 일요일) 문을 닫게 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대형마트 안가고 전통시장 갈까? 안 간다. 토요일에 장을 보든지 한주 기다렸다가 간다. 그러면 소비자 후생만 나빠진다. 차라리 대형마트들이 쉬는 날 없이 주말에 가격을 조금 높게 올려서 받을 수 있도록 해서 운영하면 어떨까. 지불용의가 있는 소비자는 대형마트를 이용할 것이고, 그 돈으로 상생기금을 모아 전통시장에 주차장도 만들어 주고 도로로 정비해주면 된다. 대형마트가 쉬면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일거리가 줄어들게 된다. 이 사람들은 전통시장에 가게를 갖고 있는 상인들보다 어쩌면 더 힘든 사람들이다.

- OECD 가입한 지 20년 지났다. 우리는 정말 선진국이 됐다고 보나.
▶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등 여러 가지 경제지표는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이미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선진국 평균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경제 시스템 전반, 기초질서나 문화 등에 있어서 선진국이 되려면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선진국이 되려면 무엇을 고쳐야 할까’ 그런 쪽으로 연구하고 있다.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우리가 선진국이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 결국 국민 역량의 문제다. 국민 한사람씩 보면 전 세계 어느나라 국민과 비교해봐도 똑똑하고 훌륭하다. 매뉴얼이나 교과서에 있는 것들을 익히고 따라 하는 능력은 출중하다. 하지만 국민소득 5만~6만달러 국민으로 평가하기엔 시민의식 등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정치와 사회, 문화적 요소에서 부족하다.

- 왜 그런가?
▶ 교육이 문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표층학습이다. 겉으로 많이 아는 교육인데, 의문을 갖고 깊이 파는 교육이 아니다. 어느 수준까지 많이 알고 있지만, 그걸 뛰어넘지 못한다.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장에 들어와선 더 심해진다. 우리나라 사회엔 연공서열이란 게 있다. 근무성적 평정, 보수, 보직 등 모두 연공서열이 강하게 지배한다. 연공서열은 기본적으로 점진적인 축적을 중시하기 때문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


- 사회 조직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 그렇다. 우리나라 조직엔 순환보직이 너무 많다. 한군데서 5~10년 일해서 전문성을 쌓을 시간 없이 자주 옮기는 문화다. 사람들이 자주 바뀌다 보니 어떤 문제에 있어 근원적 해결책보다 미봉책이 많다. 어떤 돌발사태가 터졌을 때 “지금만 잘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분위기도 여기서 나온다. 공무원들이 국회와 감사원, 언론 등의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비상대책 간판만 내놓고 눈치를 많이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다. 순환보직과 연공서열, 상명하복이 산업화 초기엔 작동 잘 됐지만, 지금은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다.

- 다른 선진국과 가장 큰 차이는 뭘까.
▶ 우리나라는 근로시간이 너무 길다. 대신 근로강도나 직무 몰입도가 느슨하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효율성도 떨어지고, 국민들의 평생 학습이 잘 안된다. 실제 GDP(국내총생산)대비 평생학습 투자가 OECD 평균의 절반도 안된다. 결국 학교에서도 대충 암기로 배우고, 직장 들어와서도 순환보직과 면피 위주로 대충 일하고, 평생학습이 안 되니 기술과 지식 축적이 느리고, 그러니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 어떻게 해야 하나.
▶ 교육 시스템을 확 바꿔야 한다. 놀기만 해도 보직이 주어지는 직장 문화를 없애는 등 노동개혁을 제대로 해야 한다. 전반적인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포괄적이고 범위가 넓은 청사진을 만들어 제시해야 하는데, 이번 정부에서 다 하기 어려울 것이다.

-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게 있다면.
▶ 구조개혁이다. 이번 정부에서 모두 할 수 없겠지만, 청사진을 만들고 전략을 담아야 한다. 액션플랜과 로드맵을 짜서 언제까지 어떤 것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규정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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