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의 방점은 권력구조 개편에 찍혀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극복이 핵심이다. 기본권 문제도 거론되지만, 전선이 확대될 경우 자칫 개헌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권력구조에 대한 '원포인트 개헌론'이 '전면적 개헌론'보다 우세한 이유다.
결국 국민들을 설득해 개헌 투표에 동참하게 만드는 게 개헌 성공의 관건인 셈이다. 4·13 총선 투표율조차 50%대에 그쳤음에 비춰 개헌을 하겠다고 대한민국 유권자 가운데 50% 이상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과 국회 등 모든 정치권이 매달려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이런 정치·사회·경제적 비용을 무릅쓰면서까지 반드시 개헌을 해야만 하는가? 개헌 말곤 현행 5년 단임제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5년 단임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건 대통령이 제대로 일할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대개 정부조직 개편과 조각, 공공기관장 인선 등을 마치고 나면 집권 1년차의 대부분이 흘러간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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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집권 중반기부터 '레임덕'이 찾아온다. 대통령 중임이 불가능하다 보니 행정부의 실·국장급 이하는 이때부터 현 정권보단 다음 정권, 국정과제보단 자신의 다음 자리에 더 정신이 팔린다. 행정부의 실무 책임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국정과제가 제대로 추진될 리 없다.
개헌을 하지 않고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한가지 있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정무직'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지금은 장·차관급만 정무직이지만, 차관보·실장급(1급) 또는 국장급(2급)까지 정무직에 포함시키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장관·부장관·차관급 뿐 아니라 차관보·국장급까지 모두 정무직으로 분류돼 있다. 때문에 대통령이 국장 자리까지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물을 앉힐 수 있고,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해임할 수도 있다.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 이후 정착된 '엽관제'(집권세력 중심의 공무원 인사)의 전통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등의 단점도 있지만, 이 덕분에 미국 대통령들은 재선 성공시 무려 8년간 재임하면서도 임기말까지 행정부에 대한 통제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엽관제보다 직업공무원제에 가깝다. 헌법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법률로서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 정무직이라는 엽관제의 요소가 가미된 형태다. 모든 공무원을 신분 보장이 안 되는 정무직으로 바꾸는 건 헌법에 위배되지만, 정무직의 범위를 일부 조정하는 건 법률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 국장급까지 정무직에 포함시키는 게 지나치다면 차관보·실장급까지만 정무직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5년 단임제의 폐해는 상당부분 줄어들 수 있다.
개헌은 만병통치약도, 유일무이한 대안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정치·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고도 5년 단임제의 단점을 극복할 방법이 있다면 굳이 고려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물론 공무원들로선 달갑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