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예술은 사기, 조영남도 사기

머니투데이 박종면 머니투데이 본지 대표 2016.05.30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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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론의 뭇매를 맞는 화가 겸 가수 조영남이 쓴 ‘현대인도 못알아 먹는 현대미술’이란 책에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얘기가 나온다. 이 책에서 조영남은 백남준이 생전에 “현대예술은 고등사기꾼 놀음”이라고 자주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예술은 사기”라는 백남준의 선언은 마치 오래전 조영남의 화투그림 대작 사건을 예상한 선지자의 예언 같다.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 이상이 말한 것처럼 조영남의 대작 사건은 명백히 사기다.



평소 가깝게 지낸 무명의 전업화가가 그린 그림을 배달받아 그 위에 덧칠을 하고 사인을 한 다음 마치 자기작품인 것처럼 포장해 수백, 수천만 원을 받고 팔았다면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조영남은 논란이 불거지자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며 앤디 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같은 대가들도 모두 조수를 데리고 작업을 한다는 식으로 해명했지만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떻게 스스로를 앤디 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의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생각을 했을까. 조영남은 근본이 없는 작가다. 백남준의 예언대로 조영남은 고등 사기꾼 놀음을 해오다 탄로 나고 말았다.



그런데 사기꾼 놀음을 한 것이 조영남뿐인가. 백남준은 조영남이 사기꾼이라고 말한 게 아니라 현대예술이 사기놀음으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조영남이 자신의 사기놀음을 현대미술의 대작 관행으로 변명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현대미술에서 대작은 보편적 현상이다. 작품에 혼을 불어넣으려고 붓질 하나에도 엄청나게 고민하고 정성을 들이면서 고독하게 작업에 몰입하는 창작자로서 미술가는 대중의 머릿속에나 있는 것이지 미술계의 현실은 아니다.

데미안 허스트나 제프 쿤스 같은 세계적 거장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도 이미 유명 작가들은 다수의 조수를 두고 고객들에게 ‘주문’받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야말로 스튜디오가 ‘공장’이 되고 유명화가는 ‘CEO 또는 관리자’가 된 것이다. 다만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조영남이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한 것은 팩트에 가깝다. 물론 유명 작가에 한해서 말이다.


현대미술이 사기놀음으로 흐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건 바로 상업주의다. 거대자본이 동원되고 재력을 갖춘 화랑과 화상이 등장하면서 사기놀음은 한층 고도화한다. 예술성이라든가 작품성 같은 것은 무시되고 돈이 된다고 하면 주문이 쏟아지며 작가는 공장의 기계처럼 작품을 찍어낸다. 평론가들과 언론매체는 거기에 온갖 찬사를 갖다 붙인다.

조영남의 화투그림 대작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다. 예술성이나 작품성보다 가수로 얻은 브랜드 하나로 그는 어느새 유명 화가가 됐고 큰돈까지 벌었다. 이게 조영남만의 잘못인가. 누가 조영남을 욕할 것인가.

“예술은 우리에게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예술은 인간의 조건인 고난을 웅대하고 진지하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야 한다. 예술은 우리의 기울어진 자아가 적당한 균형을 잡도록 회복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 갤러리들은 고통과 소멸에 대한 우리의 불안이 머물 수 있는 위안의 집이 돼야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스위스 태생의 천재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영혼의 미술관’에서 ‘인간을 치유하는 예술’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인간에게 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나. 조영남 대작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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