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선진국 독일도 보험사기로 골머리

머니투데이 베를린(독일)=전혜영 기자 2016.05.30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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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기로 연간 5.3조 손실…미수범도 적극 처벌+정부·민간 공조로 대응

"최근에 스마트폰이 망가졌다며 보험금을 타간 사례의 절반 가량은 보험사기가 의심됐습니다."

독일은 손해보험 분야에서 세계 3위, 생명보험 분야에서 세계 7위권의 보험 강국이다. 복지수준이 높은 유럽 국가의 특성상 생명보험보다는 손해보험 시장이 더 성장했다. 특히 가재도구 보험이 발달한 독일은 안경, 스마트폰, 자전거, 가구 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일상용품에 보험을 가입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보험료는 안경보험의 경우 한 달에 10유로(한화 약 1만3000원) 정도다.

인구 8000만명인 나라에 보험사만 460여개나 되고 상품도 워낙 다양하다 보니 독일에서도 보험사기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독일보험협회(GDV)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보험사기로 인한 연간 약 40억 유로(약 5조3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연간 3조원 이상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페터 홀름스톨 독일보험협회 보험사기 총괄팀장/사진=손해보험협회 페터 홀름스톨 독일보험협회 보험사기 총괄팀장/사진=손해보험협회


페터 홀름스톨 독일보험협회 보험사기 총괄팀장(사진)은 "독일인의 43%가 가재도구 보험에서 보험사기를 저지르기 가장 쉽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자기 물건이 망가졌다거나 혹은 남의 물건을 망가뜨렸다며 보험금을 타간 경우의 각각 9.2%와 15.6%는 보험사기가 의심됐다"고 말했다.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나날이 흉포화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국내 상황과 달리 독일은 '생활 보험사기범'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가족 살해 등 사회적으로 충격을 줄 만한 큰 사건은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보험사기가 일상에 만연해 있다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100유로(약 13만원) 짜리 청구 건의 보험사기 여부를 확인하는 비용으로 약 816유로(약 107만원)이 지출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일은 보험사기를 형법상 사기죄로 엄벌하고 미수에 그친 보험사기까지 보험남용죄를 적용해 처벌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올해 초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통과돼 미수범도 처벌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마련되지 않았다. 독일은 여기에 더해 앞으로 보험사기 착수단계에 대해서도 형사처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홀름스톨 팀장은 "통상 보험사기는 한 군데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기관과 민간기관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도 검찰청 산하에 보험범죄나 보험사기를 전담하는 조직을 별도로 두지 않는다. 대신 경찰과 사설기관이 수사 등을 공조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며, 조직적으로 보험사기를 막기 위한 전문인력양성프로그램(ZAD)을 가동해 이른바 '보험탐정'을 배출하고 있다.


경찰과 변호사들이 보험사 직원들에게 매년 보험사기 관련 교육도 실시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으로 가짜 롤렉스 시계를 산 후 보험에 가입하고 사기를 치는 경우 롤렉스 시계의 진품 여부를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식이다.

독일은 유럽사기대응 총국(OLAF)을 통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유럽국가들과의 공조도 강화하고 있다. 홀름스톨 팀장은 "앞으로 과제는 해외에서 보험사기를 치더라도 이를 밝혀내는 것"이라며 "각 지역에 따라 문화나 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 공조가 가능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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