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본토 러시아를 놀라게 한 스물넷 발레리노 김기민의 도전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2016.05.28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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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최연소 '브누아드 라 당스'상 받아…"자신에게 지적을 많이 하는 것이 강점"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은 한국 남성무용수로는 최초로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수상했다. /사진제공=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은 한국 남성무용수로는 최초로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수상했다. /사진제공=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여자만큼 긴 목과 쇄골. 그리고 우아함. 턴과 점프에서는 강력한 힘이 느껴질지 모르지만, 무용의 기본인 아름다움은 남자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라 바야데르'의 전사 '솔로르' 역을 맡아 한국 남자 무용수로는 최초로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상을 받은 발레리노 김기민(24)은 바로 그 표본이다.



전화 인터뷰로 만난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상이지만, 수상 이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각종 연습과 리허설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는 "상을 받아서 기쁜 감정이 아무래도 제일 크다"면서도 "아직 나이가 많지 않다 보니 '최초·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 것 같다"고 겸연쩍어했다.



김기민은 "예전에는 두려움이나 부담감이 들었는데 이제는 책임감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고도 털어놨다. '동양인 발레리노'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러시아에서 한국무용수로서 상을 받은 데 대한 책임감이다.

"한국을 많이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는 꾸준히 자신을 채찍질하며 단련한 것을 수상이유로 조심스레 꼽았다.

"자신에게 지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그게 제 장점이 아닌가 싶어요. 계속 단점을 찾고 보완해나가려고 하죠. 그런 모습들이 (심사위원진에) 전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겸손하게 답했지만, 그는 한 배역의 캐릭터를 완성해나가기 위해 밤낮으로 매달린다. 끝나고 난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는 공연은 자신이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할 때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

"가장 중요한 것은 역할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죠. 완전히 소화하기 위해 많이 읽고, 듣고, 보는 것이 핵심이에요."

'솔로르' 역을 맡았을 때도 그랬다. 음악을 여러 번 듣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발레리노가 맡았던 영상을 모두 찾아봤다. 작곡가와 안무가의 철학을 알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그 사람의 삶을 알아야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단 소신에서다.

"안무가의 철학을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이건 글로 쓰여있는 게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힘든 부분이 있죠. 여러 안무가 선생님을 찾아가 여쭤보거나 책도 많이 찾아보죠. 정보를 찾을수록 (저만의) '솔로르' 캐릭터를 완성해나갈 수 있어요."

김기민은 "배역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해 작곡가나 안무가의 철학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김기민은 "배역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해 작곡가나 안무가의 철학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그에게 최고의 파트너는 세 살 위의 형 김기완(27)이다.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인 형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조언자인 셈.

"형하고는 자주 연락하며 서로한테 서슴없이 지적해요. 인생에 대해서도 발레에 대해서도…발레가 잘 안 될 때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친구랑 싸웠을 때도 제일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죠. 형도 (무용이) 힘든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발레 인생에 가장 의지가 많이 되는 사람이에요"

그가 가장 많이 보고 배우는 사람 역시 형이다. 김기민은 "형은 무용수로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라며 "형의 안무는 배울 것도 감동도 많다"고 치켜세웠다.

어린 시절부터 '발레 신동'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그다. '브누아 드 라당스' 수상으로 정점에 이르렀다는 평도 받는다. 하지만 무용인생에서 그의 목표는 특정한 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대신 모든 무대에서 관객에게 자신의 메시지가 완벽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제 목표는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철학을 완전히 전달 하는 거에요. 제가 원하는 춤으로, 제가 해석한 메시지를 전하려면 정말 많이 노력해야죠. 하지만 그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됐을 때 비로소 (한 단계) 위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쉽게도, 한국 관객을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미정이다. 한국으로 여름휴가를 나올 계획이었지만 거듭된 일정으로 그마저도 불투명해졌다.

"마린스키발레단이 한국 공연을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어요. 한국 관객들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전해주세요."

스물넷, 김기민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김기민은 한국 관객들에게 "한국공연을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전했다. /사진제공=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김기민은 한국 관객들에게 "한국공연을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전했다. /사진제공=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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