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구술로 되살려낸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의 기록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2016.05.2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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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5명의 기억수집가가 모은 59명의 구술…'1995년 서울, 삼풍'

현장의 구술로 되살려낸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의 기록


개인의 기억이 모여 사회적인 기록이 될 때, 그 기록은 곧 역사가 된다. 1995년 6월 29일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던 서울 서초구의 삼풍백화점 참사. 그 현장에 있던 59명의 기억이 모여 현대사의 비극을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메모리 인(人) 서울프로젝트'의 결과물, '1995년 서울, 삼풍'은 5명의 '기억수집가' 김정영, 류진아, 박현숙, 최은영, 홍세미씨가 2014년 10월 7일부터 2015년 7월 30일까지 약 10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인터뷰한 108명 가운데 59명의 구술을 모아 참사를 기록한 책이다.



502명 사망, 937명 부상. 삼풍백화점 사고는 한국전쟁 이후 단일 사건 최대 사상자를 낸 참사다. 현장에 있던 구술자들의 표현에 의하면 삼풍백화점은 "시루떡 형태로"(당시 도봉소방서 경광숙씨) "착착 포개져"(유가족 허재혁씨) "지하로 쑥 내려가"(유가족 김문수씨) "폭격에 맞은 듯한"(당시 조선일보 기자 홍헌표씨) 모양이라고 기억한다.

59명의 진술은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여 당시 초호화 백화점이었던 1995년 삼풍백화점의 조감도를 완성해낸다.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가 풀어내는 현장의 구술을 통해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잊혀진 기록을 채워넣는다.



붕괴 현장에서 골프채를 훔치는 좀도둑을 잡은 경찰, 취재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위장한 기자, 자녀에게 끝끝내 참사 경험을 숨기고 마는 생존자, 매몰된 부상자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119 구조대원, 꺼림칙한 기분에도 자리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매장 직원…구술자들이 힘겹게 끄집어낸 기억은 퍼즐 조각처럼 당시 상황을 시간대별로 재현해낸다.

책에 실린 30여 장의 참사 현장 사진은 생생함을 더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보도사진이 아닌 서초소방서와 당시 대한건축사협회 이사로 특별대책점검반이었던 구술자 이종관씨가 찍었던 기록용 필름 사진이다.

구어체를 그대로 살린 구술과 사진은 마치 한 편의 현장감 넘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다. 여기에 상세한 사건 개요와 판결문 등 사고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를 더해 '기록'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함께 실린 박해천 동양대 공공디자인학부 교수의 글을 통해선 당시 강남에 우후죽순 생겨난 백화점의 사회적·시대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정윤수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는 사회적인 재난을 기억해야 하는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재난에 의하여 먼저 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의 상흔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의하여 자연 치유되도록 방치되고 있다. 일종의 무책임한 운명론이 그 상흔들을 압도해버린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 교수의 말처럼, 대형참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동시대인들의 '사회적 의무'와도 같다. 1999년 씨월드 참사,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2014년 경주리조트 참사와 세월호 참사까지…삼풍백화점 이후 20년, 책은 반복되는 대형 재난 속에서 기록의 묵직한 힘을 전달해준다.

◇1995년 서울, 삼풍=서울문화재단 외 지음. 동아시아 펴냄. 280쪽/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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