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 책임 인정하라" 목소리 외면하는 정부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이태성 기자, 양성희 기자, 한정수 기자, 김종훈 기자, 이경은 기자 2016.05.14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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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살롱<115>]드러난 과실에도 책임회피에 급급…검찰 수사 이뤄지지 않아도 책임은 인정해야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형마트들의 옥시불매에 대한 진정한 의사를 밝히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형마트들의 옥시불매에 대한 진정한 의사를 밝히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68) 대표를 구속하며 정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검찰이 가장 큰 피해를 낸 옥시의 전 대표를 비롯, 관련자들을 모두 구속시키는데 성공한만큼 다른 업체에 대한 수사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검찰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정부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선을 분명하게 긋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피해자들이 정부를 탓하는 이유와 검찰이 선긋기를 하는 배경을 살펴보려 합니다.



아무련 규제 없이 만들어져 판매된 살균제

정부의 '관리 부재'는 이번 사태를 불러 온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우선 환경부는 1997년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가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합니다. PHMG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쓰여 가장 큰 피해를 발생시킨 물질입니다. 환경부는 당시 이를 아무런 검사 없이 시장에 풀었습니다.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PHMG를 쓴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허가한 부처입니다. 당초 산업부는 이 살균제를 '세정제'로 허가해줬다고 합니다. 세정제는 통상 피부독성 실험을, 살균제는 흡입독성 실험을 필요로 하는 전혀 다른 제품임에도 산업부는 '세정제'가 '살균제'로 팔린 사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제약 없이 정부의 승인을 받은 가습기 살균제는 시장에서 '인체에 무해하다'는 꼬리를 달고 팔려나갔습니다. 정부는 이후 대형마트에서 만들어낸 PB상품도, 버터플라이이펙트라는 영세업체에서 만든 살균제도 아무런 검증 없이 시장에 팔 수 있도록 했습니다.

버터플라이이펙트에서 만든 세퓨 가습기 살균제는 당시 정부 관리가 어느정도로 허술했는지 잘 말해줍니다. 세퓨 가습기 살균제에는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 성분이 사용됐습니다. 이 역시 2003년 환경부가 판매를 허가해준 제품인데, 문제는 출처입니다. 당시 오모시는 자신이 일하던 회사에서 이 물질을 빼돌려 살균제를 만들었습니다.


본인 외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화학물질로 오씨는 인터넷 등에서 찾은 자료를 참고해 콩나물 공장에서 살균제를 만듭니다. 당시 그는 인체에 무해한 수준의 160배에 해당하는 양의 PGH를 살균제에 넣었습니다. 심지어 빼돌린 PGH가 다 떨어져가자 PHMG를 섞었습니다.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와 이를 이용한 제품 관리가 국가에 의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

이번 사태와 관련있는 정부의 각 부처들은 화학물질을 관리하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이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변명합니다. 이 변명들은 실제로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책임 떠넘기기'로 보일 뿐입니다.

우선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되기 시작했을 당시 환경부는 제품에 대한 책임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2015년 화학물질평가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환경부는 화학물질만 관리했지, 화학물질을 이용한 2차 제품은 관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에 따르면 1991년 이후 국내에 수입·제조된 신규화학물질에 대해서는 화학물질 정보를 확인해야 합니다. PHMG, PGH는 모두 해외에서 수입된 화학물질입니다. 환경부는 기업에서 제출한 정보만 믿고 이 물질 사용을 허가해 줬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산업부는 당시 공산품으로 분류됐던 살균제를 관리한 주무부처입니다. 산업부는 '가습기를 씻는 세정제로 허가를 내준 것으로 유해성 평가는 우리 담당이 아니었다'는 입장입니다. 버젓이 살균제라는 이름을 달고 팔려나갔는데도 말입니다. 일부 가습기 살균제에는 KC(국가통합인증)마크를 달아줬음에도 '자율인증마크'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검찰의 선긋기, 수사는 이뤄지지 않아도 사과는…

정부 부처들이 이처럼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만 보이자 피해자들의 분노는 당연히 정부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해자들은 환경부, 산업부, 복지부 등 살균제 사태와 연관이 있는 정부부처는 모두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검찰은 아직까지 정부 부처에 대한 수사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부 부처의 행위는 법에 저촉될 것은 아니다'라는 이유에섭니다.

실제로 법조인들은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한 변호사는 "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이같은 일을 벌였으면 형사처벌은 가능하다"며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로 인해 발생한 이번 사건 같은 경우 형사처벌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변호사도 "민사상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수사팀 관계자도 "정부에 대해 형사 책임 물을만한 근거 법규가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하는 상황입니다.

특별한 증거가 추가로 발견되지 않는 한 이번 검찰 수사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에서 마무리 될 공산이 커보입니다. 하지만 수사를 안받는다고 해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도 정부는 비판을 받아 마땅한 상황입니다.

지난 11일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국회에서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습니다. 사과를 요구하는 야당 의원들에게도 '책임 통감' 발언만 반복해 빈축을 샀습니다. 정부는 과연 피해자들의 분노와 원망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윤 장관 보고 사퇴하라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왜 나왔는지, 정부는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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