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서울의 라데팡스

머니투데이 조명래 단국대학교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2016.05.11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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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시평] 서울의 라데팡스


라데팡스는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 서쪽으로 6㎞ 떨어진 곳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첨단 신시가지를 말한다. 동쪽으로 콩코드광장과 루브르궁전을 잇는 일직선의 서쪽 끝에 라데팡스가 자리한다. 이 일직선은 파리 도심부의 강력한 시각축을 이루면서 동시에 프랑스의 과거, 현재, 미래를 표현한다. 1958년부터 장장 30년 간의 개발구상을 거친 뒤 지금의 라데팡스가 조성됐지만 대부분 건설은 1980~90년대에 이루어졌다.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이곳에 ‘라그랑드아르슈’(La Grande Arche)라는 신개선문이 건설됐다. ‘세계로 향하는 창’이라는 의미를 담은 높이 110m의 신개선문은 에투왈광장에 있는 개선문의 2배 크기로 라데팡스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와 같다.



라데팡스가 매력적인 것은 조각 같은 건축물과 드넓은 보행광장 때문만이 아니라 도로와 자동차를 지하에 숨긴 뒤 지상을 보행자의 해방공간으로 만들어놓은 점이다. 복층으로 되어 있는 라데팡스의 지하엔 파리 외곽과 파리 도심을 연결하는 교통 흐름을 모으면서 도심의 각 방면으로 연결하는 거대한 입체교통망이 구축되어 있다. 프랑스 고속철도 TGV는 물론 교외·도시철도, 고속버스 등 이곳을 지닌다.

하지만 고속철도망에 직접 연결되어 있지는 않고 대신 노르망디 교통량을 흡수하는 고속도로가 라데팡스 지하도로를 지나 파리 순환도로와 연결된다. 지하도로 사이엔 지하철노선 MI이 있어 인근 개선문역을 통해 공항이나 몽마르트 등으로 연결된다. 버스 18개 노선도 복층도시 라데팡스 지하에 설치되어 있다. 거대 자동차 흐름을 지하에 넣은 뒤 지상 공간은 사람들에게 돌려줘 도시 속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 되도록 했다.



서울 영동대로 지하에 한국판 라데팡스로 불리는 국내 최대 광역복합환승센터가 조성된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9호선 봉은사역까지 연장 630m 구간 지하공간에 총 6개층, 연면적 16만㎡에 이르는 통합철도역사, 지하버스환승센터, 도심공항터미널, 주차장, 상업·공공문화시설 등이 들어선다. 이곳엔 삼성-동탄 광역급행철도, KTX 동북부 연장, GTX-A, GTX-C, 남부광역급행철도, 위례-신사선 등 삼성역을 경유하는 6개 노선의 역사가 통합건설된다. 시내 및 광역버스 90개 노선도 들어온다. 통합역사의 하루 평균 이용객이 서울역의 1.3배인 40만명에 이르고 버스이용객까지 포함하면 58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동서로 코엑스몰과 새로 조성될 GBC 지하쇼핑몰을 연결해 잠실야구장 30배 규모의 지하도시가 만들어진다. 사업비만 1조1700억원이 투입된다.

영동대로의 지하입체도시를 한국판 라데팡스로 부르기엔 뭔가 맞지 않는 것 같다. 파리 라데팡스의 매력은 입체교통시설이 들어선 지하공간보다 조각 같은 건축물과 보행자 광장 등으로 구성된 지상공간에 있다. 입체교통시설을 복개한 것은 지상을 사람 중심의 공간으로 열어주기 위함이다.

영동대로 일대를 진정한 한국판 라데팡스로 만들려면 대규모 지하입체도시를 만든 것으로 끝나지 말고 지상을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건축물이 들어서는 건축공간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찾아와 쉬고 머무는 사람 중심의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영동대로 일대가 강남으로 모든 걸 끌어들이고 집중하는 중심지로서가 아니라 라데팡스와 같이 서울의 이곳저곳(특히 강남·북)을 잇고 순환하는 연결지가 되도록 해야 한다. 파리의 라데팡스는 30년의 긴 구상을 통해 프랑스의 과거와 연결하면서 세계를 향해 미래를 여는 깊은 프랑스식 사유의 구현물이다. 영동대로 일대에 조성되는 입체도시가 한국판 라데팡스가 되려면 서울(혹은 한국)의 과거와 연결하며 미래를 여는 철저한 한국적 사유를 투영하고 구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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