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중국의 추격 "조선산업을 반면교사로"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원종태 특파원 2016.05.11 06:30
글자크기
길게 보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승부다. 한국 대 중국의 조선산업이 그렇다.

중국 조선업체들은 2007년 선박 2036척(3254만톤)을 수주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물량이 계속 줄며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급기야 2012년 수주물량은 5년 전의 20%까지 떨어지며 최악을 맞았다. 당시 광촨궈지와 롱셩종공 같은 중국 조선업체들은 순이익이 반 토막 났다. 진강촨예 같은 기업들은 법원에 파산 신청서를 냈다. 180개 조선업체 중 46개가 신규 주문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생산 중단에 들어갔다. 그때 중국이 부르짖은 레퍼토리는 단 하나였다. 한국과 일본을 뛰어넘어야 산다는 것이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 4월 중국 최대 조선업체인 중국선박공업집단(CSSC) 청시조선소는 스웨덴 EK탱크가 14년만에 발주한 1만8600톤급 화학약품 운반선을 수주했다. 선박 설계는 스웨덴 기업이 맡았다. 한국 조선업체들이 경쟁력을 키우던 방식 그대로다.



특히 화학약품 운반선은 세계 조선업계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선박으로 꼽힌다. 이 선박은 석유·가스 분야의 세계적 선도회사인 DNV GL이 규정한 아이스 클래스 1A 슈퍼 조건을 만족할 수준으로 건조된다. 아이스 클래스 1A 슈퍼 조건이란 북극해 같은 빙해역에서 충돌·좌초에 따른 해상오염을 막기 위해 선박의 설계와 운항조건을 까다롭게 규정한 것이다. 중국 조선업계는 이 선박 수주를 한국과 일본을 따라잡는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막대한 선박 발주를 해줄 선사들도 널려 있다. 지난달 전 세계 5위 수주잔량을 갖고 있는 상하이와이가오차오조선에 또 다시 40만톤급 초대형 광탄선(VLOC) 4척을 몰아준 곳도 중국 선사인 차이나 머천트 에너지 쉬핑이었다. 또다른 중국 선사인 중국원양해운그룹은 지난달 10척의 동형선을 상하이와이가오차오에 밀어줬다. 중국 선사들은 브라질 최대 자원업체인 발레(Vale)와 27년 장기운송계약을 맺고, 브라질산 자원을 수입해주는 조건으로 ‘발레막스’로 불리는 30척의 VLOC를 자국 조선업계에 발주하기도 했다.



중국은 자본력까지 있다. 지난해 말 브라질 발레가 40만톤급 광탄선 4척을 4억2300만달러에 매각한 곳도 다름 아닌 중국공상은행 계열 리스 자회사였다.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아가는 셈이다.

특유의 저가 수주도 중국 조선업계의 경쟁력이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업체 클락슨에 따르면 자체 크레인이 장착된 2500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급 선박의 중국 발주 가격은 3000만 달러로 1년만에 400만 달러가 떨어졌다. 한국이나 일본 조선업계에서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가격대다. 이런 가격경쟁력으로 지난 4월 중국 웨이하이중원조선은 일본 오노미치조선으로부터 6만4000톤급 벌크선까지 수주했다.

중국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조선산업 구조조정도 착실하게 밀어 부치고 있다. 이미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한 실업자들의 직업 교육과 창업 지원책까지 마련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아직까지 구조조정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속 타는 논쟁이 뜨겁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국에게 밀릴 것이 뻔한데도 마지막 카드조차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피가 튀고, 살이 깎이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살아 남아야 한국 조선 산업에 다시 기회도 생긴다. 비단 조선 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 산업 전반에 몰아칠 중국의 추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참에 본보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