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카페에 직접 올렸던 과거 사진을 지우고 싶다. 회원 탈퇴를 한 이후 내가 올린 사진들이 검색에 노출되고 있다. 이 사진들을 내릴 방법이 없을지 고민이다.
◇ 2014년 유럽에서 촉발된 '잊힐 권리' 논쟁
이는 전세계적으로 처음 잊힐 권리가 인정된 판결이었다. 특히 글로벌 사업자인 구글을 대상으로 한 판결로 유럽 외 지역에서도 참고 자료가 됐다. 이후 유럽 내 각국은 물론 우리나라, 미국 등에서는 잊힐 권리에 대한 정부 차원 논의가 본격화됐다.
올해 들어 일본에서도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와 화제가 됐다. 일본 사이타마 지방재판소는 한 남성이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자신과 관련된 사법처리 기사를 구글 검색에서 삭제해 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였다. 사회 적응에 방해받지 않은 권리가 있다는 것이 법원 판결의 요지였다.
이 시각 인기 뉴스
해당 판결들은 다양한 논쟁점을 만들어 왔다.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데 내건 단서 조항들이 화두가 됐다. △게시글 삭제가 아닌 검색 결과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내린 것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이 아닌 기사에 대해 잊힐 권리를 인정한 점 △검색어가 본인 이름인 경우에만 검색 배제 조치토록 한 점 △범죄자와 관련 기사도 잊힐 권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잊힐 권리의 기준을 어떻게 수립할 지에 대한 첨예한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잊힐 권리 그 균형점은
잊힐 권리 논의의 핵심은 기본권의 충돌이다.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자기정보결정권이 맞부딪친다. 잊힐 권리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타인이 게시한 글, 기사 등에 대해 삭제 요청, 검색 배제 요구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이면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로운 의견 표출이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인, 유명인 혹은 범죄자가 잊힐 권리를 주장하면서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받을 수 있다.
인터넷 업계는 유럽재판 결과 가운데서도 잊힐 권리를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고 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럽재판소 판결을 보면 잊힐 권리를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같은 다른 기본권과 항상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전면적인 잊힐 권리 인정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잊힐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장의사' '디지털 세탁업' 등의 출현이 이를 방증한다. 디지털 세탁업은 인터넷에 유출된 기업과 개인의 잘못된 정보, 개인의 은밀한 동영상·사진 등을 전문 업체가 삭제해주는 사업이다. 그만큼 인터넷 게시글에 대한 삭제, 검색 배제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
국내에서는 '잊힐 권리'를 위한 제도가 도입된다. 그 첫단계로 '본인이 작성한 게시글'에만 제한 적용한 가이드라인이 오는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부터 법제화 검토를 진행한 끝에 우선 시범적용 수준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해당 가이드라인의 특징은 제3자가 아닌 이용자 본인 혹은 사자가 게시한 글, 사진 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논란이 됐던 기사는 잊힐권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공인의 공공, 공익적 사안이 담긴 게시물도 빠졌다. 게시글 삭제 요청이 아닌 검색 결과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잊힐 권리를 보호하도록 명시했다. 접근배제 요청은 게시판 관리자 뿐 아니라 검색 서비스 사업자에게도 할 수 있다.
국내 잊힐 권리 논쟁은 지속될 전망이다. 가이드라인 제정은 잊힐 권리 법제화의 첫 단계이지만 강제성은 없다. 실제 시행 과정에서 기술적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다. 접근 배제 요청의 당위성을 심사하고 결정하는 기준과 주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부족하다. 방통위 측은 이번 가이드라인 시행 과정을 점검해 잊힐 권리에 대한 정책 방향을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