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게시글 지울 권리도 내게? '잊힐 권리' 어디까지 인정할까

머니투데이 진달래 기자 2016.05.05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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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클린 2016]<3> 국내 자기 게시글에 대한 잊힐권리 가이드라인 제정부터

편집자주 머니투데이가 건전한 디지털 문화 정착을 위해 u클린 캠페인을 펼친 지 12년째를 맞았다. 과거 유선인터넷 중심의 디지털 세상은 빠르게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차원을 넘어 사물과 사람, 사물과 사물을 연결한다. 인공지능은 발전을 거듭해 바둑에서도 사람을 넘어섰다. 드론은 정보수집, 물류, 이동수단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보화 사회를 넘어 지능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그 반대 편에는 짙고 넓은 그림자가 함께한다. 과거에는 사이버 폭력과 해킹 등 부작용이 유선 인터넷 세상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졌지만 오늘날에는 시공간을 초월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ICT 기술발전이 빨라지면서 사이버 부작용은 이제 인류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올해 u클린 캠페인은 지능화 사회에 대비한 올바른 디지털 윤리 문화를 집중 조명해봤다.

내 게시글 지울 권리도 내게? '잊힐 권리' 어디까지 인정할까


#10여년 전 법정 소송에 휘말렸던 사건이 내 이름을 포함해 여전히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있다. 소송은 잘 마무리됐지만 게시글은 그대로다. 타인이 작성한 글이라서 직접 지울 수도 없다. 게시판 운영자에게 삭제 요청할 방법이 있을까.

#인터넷 카페에 직접 올렸던 과거 사진을 지우고 싶다. 회원 탈퇴를 한 이후 내가 올린 사진들이 검색에 노출되고 있다. 이 사진들을 내릴 방법이 없을지 고민이다.



내가 게시한 각종 글, 사진은 물론 나에 대한 내용이 담긴 게시글에 관한 나의 법적 권리는 어디까지 인정받을 수 있을까. 삶의 온오프라인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온라인 게시물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규정하기가 더욱 복잡해졌다. 인터넷 시대 초기에는 표현의 권리가 화두였다면, 이제는 '잊힐 권리'가 주목받는다.

◇ 2014년 유럽에서 촉발된 '잊힐 권리' 논쟁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 논쟁은 2014년 유럽사법재판소의 한 결정이 기점이 됐다. 스페인 국적의 마이로 코스테자 곤잘레스가 구글을 상대로 16년 전 실린 주택경매 공고에 대한 게시글이 검색 결과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한 것. 당시 사법재판소는 검색엔진 운영자인 구글이 해당 게시글을 검색 결과에서 배제토록 조치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처음 잊힐 권리가 인정된 판결이었다. 특히 글로벌 사업자인 구글을 대상으로 한 판결로 유럽 외 지역에서도 참고 자료가 됐다. 이후 유럽 내 각국은 물론 우리나라, 미국 등에서는 잊힐 권리에 대한 정부 차원 논의가 본격화됐다.

올해 들어 일본에서도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와 화제가 됐다. 일본 사이타마 지방재판소는 한 남성이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자신과 관련된 사법처리 기사를 구글 검색에서 삭제해 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였다. 사회 적응에 방해받지 않은 권리가 있다는 것이 법원 판결의 요지였다.


해당 판결들은 다양한 논쟁점을 만들어 왔다.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데 내건 단서 조항들이 화두가 됐다. △게시글 삭제가 아닌 검색 결과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내린 것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이 아닌 기사에 대해 잊힐 권리를 인정한 점 △검색어가 본인 이름인 경우에만 검색 배제 조치토록 한 점 △범죄자와 관련 기사도 잊힐 권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잊힐 권리의 기준을 어떻게 수립할 지에 대한 첨예한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잊힐 권리 그 균형점은

잊힐 권리 논의의 핵심은 기본권의 충돌이다.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자기정보결정권이 맞부딪친다. 잊힐 권리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타인이 게시한 글, 기사 등에 대해 삭제 요청, 검색 배제 요구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이면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로운 의견 표출이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인, 유명인 혹은 범죄자가 잊힐 권리를 주장하면서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받을 수 있다.

인터넷 업계는 유럽재판 결과 가운데서도 잊힐 권리를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고 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럽재판소 판결을 보면 잊힐 권리를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같은 다른 기본권과 항상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전면적인 잊힐 권리 인정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잊힐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장의사' '디지털 세탁업' 등의 출현이 이를 방증한다. 디지털 세탁업은 인터넷에 유출된 기업과 개인의 잘못된 정보, 개인의 은밀한 동영상·사진 등을 전문 업체가 삭제해주는 사업이다. 그만큼 인터넷 게시글에 대한 삭제, 검색 배제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
내 게시글 지울 권리도 내게? '잊힐 권리' 어디까지 인정할까
◇ 국내 그 첫걸음, 자기 게시글에 한해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 시행 눈앞

국내에서는 '잊힐 권리'를 위한 제도가 도입된다. 그 첫단계로 '본인이 작성한 게시글'에만 제한 적용한 가이드라인이 오는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부터 법제화 검토를 진행한 끝에 우선 시범적용 수준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해당 가이드라인의 특징은 제3자가 아닌 이용자 본인 혹은 사자가 게시한 글, 사진 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논란이 됐던 기사는 잊힐권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공인의 공공, 공익적 사안이 담긴 게시물도 빠졌다. 게시글 삭제 요청이 아닌 검색 결과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잊힐 권리를 보호하도록 명시했다. 접근배제 요청은 게시판 관리자 뿐 아니라 검색 서비스 사업자에게도 할 수 있다.

국내 잊힐 권리 논쟁은 지속될 전망이다. 가이드라인 제정은 잊힐 권리 법제화의 첫 단계이지만 강제성은 없다. 실제 시행 과정에서 기술적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다. 접근 배제 요청의 당위성을 심사하고 결정하는 기준과 주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부족하다. 방통위 측은 이번 가이드라인 시행 과정을 점검해 잊힐 권리에 대한 정책 방향을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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