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고(故) 프린스'라니…

머니투데이 이승형 건설부동산부부장 2016.04.2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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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형의 세상만사]

미국의 팝 슈퍼스타 프린스(57)가 21일(현지시간) 미네소타 자택에서 돌연 숨졌다./ 사진=뉴스1미국의 팝 슈퍼스타 프린스(57)가 21일(현지시간) 미네소타 자택에서 돌연 숨졌다./ 사진=뉴스1


“나는 침대위에 드러누워 헤드폰으로 프린스의 음악을 듣는다. 그 기묘하게 쉼표가 없이 계속되는 음악에 의식을 집중한다. 첫 번째 배터리가 ‘리틀 레드 코르벳(Little red corvette)’도중에 끊어진다. 음악은 물에 쓸려 흐르는 모래 속에 삼켜져 버리듯 그대로 사라지고 만다. 헤드폰을 벗어놓자 침묵이 들린다. 침묵이란 귀에 들리는 것이다. 나는 그 이치를 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의 한 구절이다. 15세의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는 세상과 격리된 깊은 숲속에 들어가 어두운 정적과 마주하며 인생의 첫 은둔을 경험한다. 인간의 흔적이란 전혀 없는 공간에서 비로소 자유를 느끼는 그에게 유일하게 세상과 연결해준 매개체는 바로 프린스의 노래였다.



하루키는 영리했다. 대낮에도 어두울 만큼 하늘을 가리는, 키 높은 나무들로 가득한 숲 한 가운데에 소년을 데려다 두고, 프린스의 ‘베스트 앨범’을 켜 놓고는 껐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하나의‘울림’으로서의 장치. 프린스의 노래는 희망, 용기, 자유를 대변했던 것이다.

프린스가 죽었다. 80년대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팝음악을 과점했던 그가 57세의 젊은 나이에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다. 160cm가 되지 않는 작은 키에 반짝이 망토를 입고, 기타를 둘러맨 채 온갖 폼은 다 잡던 그의 모습을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배 나온 40대 후반의 아저씨로서, 내 젊은 시간의 일부를 함께 했던 이가 이렇게 훌쩍 떠나는 건 몹시도 가슴 아픈 일이다. 청춘이 종말을 고한 지가 오래 전임에도, 어떻게든 그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던 손아귀에서 또 한 꺼풀 힘이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불현 듯 오늘 같은 날, 늘 귓전에 맴돌던 그 속삭임은 고막을 찢어버리기라도 할 듯이 쩌렁쩌렁 뒷통수를 때린다. “넌 더 이상 젊지 않아. 이로써 네 젊음의 한 자락이 또 하나 뜯겨 나간 거라고. 어디 가서 건방질 자격도 없는 게지.”

내 기억의 프린스는 늘 거만했다. 웃는 법이 없었고, 통굽으로 한껏 치솟은 눈길은 사방을 내려 깔아 보았다. 난 그게 좋았다. 젊음에서 오는 치즈처럼 느끼하고, 초코렛처럼 달콤한 그 자신감이 좋았다. 그래서 프린스의 갑작스런 부고(訃告)는 견디기가 더 어렵다. 피천득의 ‘인연’처럼 추억이란 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빛나는 시절은 있다. 그리고 그 빛이 바래져가는 시간들이 있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모든 끝이 달라진다. 젊은 시절에 일궈 놓았던 그 아름다운 업적들을 갉아먹고 사느냐, 아니면 더 아름답게 가꾸며 늙어갈 것이냐.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최소한 난 교통비 받고 시위를 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올드 앤 와이즈(old & wise). 늙으면 현명해져야 한다.

어쨌든 당분간 프린스의 노래는 듣지 않으련다. 지금은 더 슬퍼할 일이 많다. 몇 년 뒤쯤 세상이 좀 더 좋아지면 하루 정도 날을 비우고 그 때 보랏빛 빗물이든, 비둘기든, 코르벳이든 같이 부르며 실컷 울어주겠다. 그것이 내 젊음을 함께 했던 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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