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말에서 돈이 보인다"

머니투데이 박중제 메리츠종금증권 투자전략팀장 2016.03.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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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디렉터]박중제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

"CEO의 말에서 돈이 보인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그러한 다양성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세상살이의 축소판인 주식시장에서도 주식을 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탑다운(Top-down) 투자와 바틈업(Bottom-up) 투자를 생각해볼 수 있다. 말 그대로 탑다운은 위에서 밑으로, 바틈업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며 주식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즉 탑다운은 먼저 경제 상황과 사회의 큰 트렌드를 살펴보고 거기에 맞는 주식을 고르는 것이고 바틈업은 개별 기업의 현황을 파악한 뒤 가장 좋은 주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탑다운과 바틈업 방식은 단지 접근 방법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의외로 양측은 서로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바틈업 투자자들은 탑다운 투자가 자칫 현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거대담론에 함몰되면 올바른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탑다운 투자자들은 바틈업 방식이 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한다.



필자처럼 투자 전략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탑다운 방식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전체 경제와 금융시장을 고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탑다운과 바틈업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를 바탕으로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탑다운이든 바틈업이든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세상의 흐름을 관찰하고 그 안에 함축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주로 큰 그림을 보는 탑다운 투자자라고 하더라도 현실과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바틈업 투자방식을 함께 이용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그래서 얼마 전부터 글로벌 기업의 CEO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경제지표만을 보면서는 알기 어려웠던 세상의 이야기가 실적 발표 자리 등에서 CEO가 내놓는 무수한 말들 속에 담겨 있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의 GE는 발전소터빈, 풍력터빈, 항공엔진, 의료장비 등을 생산하는 거대한 기업이다. 업황이 기업의 투자와 밀접한 업종을 산업재라고 부르는데 GE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재 기업이다.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투자 사이클이 꺽이면서부터 산업재 기업의 업황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GE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GE의 주가는 신고가를 기록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2015년 실적발표 자리에서 GE의 회장 제프 이멜트(Jeff Immelt)는 재미있는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세계 경제가 여전히 어렵고 저성장 위험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4분기부터 GE의 가스터빈 신규 수주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가스터빈을 주로 사들이는 국가가 사우디, 파키스탄 등 중동 및 아시아의 신흥국이었다는 점이다. 제프 이멜트 회장은 그가 경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시각으로 이러한 현상을 해석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다양한 경제지표를 보면 신흥국 경제 상황이 여전히 어렵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멜트 회장의 발언을 통해 유추해보면 생각보다 신흥국의 투자 수요가 견조하고 특히 지난 4분기 이후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올해 들어 글로벌 산업재 기업 주가가 동시에 상승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수긍이 간다.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자. 글로벌 운송회사인 페덱스(FedEx)의 회장 프레드 스미스(Fred Smith)는 지난 실적 발표 자리에서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운송 산업도 통신,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네트워크 효과’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경제란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산업으로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전체 산업의 효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네트워크 경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신규 진입자의 위협이 그만큼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데 그래서 아마존이 직접 배송을 늘리고 있지만 그 영향이 그렇게 크지 않다고 밝혔다. 실제 페덱스의 영업이익이 20% 가까이 급증하는 등 지난 분기 실적은 매우 양호했다.

아마존처럼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이 물류 시장에 진출한다면 얼핏 기존 업체들이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드론 등의 새로운 기술들을 활용해 배송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한편 페덱스의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시장의 마법사들이라는 책에서 전설적 투자자 에드세이코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투자자들은 누구나 시장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다." 이 말은 비록 돈을 잃는 투자자들일지라도 시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돈을 잃는 대신에 아마도 자존심을 지킬지 모르겠다.

탑다운이든 바틈업이든 중요한 것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 성공적인 투자로 이끄는 것이다. 혹시 이 세상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데 흥미가 있는 투자자라면 잠시 시간을 내서 CEO들이 하는 말들을 들어보자. 그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현실이 있다. 또한 그 곳에 돈 버는 길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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