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기업 "'초코파이' 간식 준 거밖에 없는데…"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2016.03.24 07:30
글자크기

[같은생각 다른느낌]경제적 손실과 핵무기 개발 원조 불명예 낙인의 이중고

편집자주 색다른 시각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우리(개성공단 기업들)가 북한 핵무기 개발을 원조했나요? 한 때는 남북경제협력과 긴장완화에 기여한다는 칭찬도 들었는데 너무 억울합니다."

정부가 지난 2월10일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발표한지 한 달이 지났다. 갑작스런 개성공단 폐쇄로 입주기업뿐 아니라 협력업체는 도산위기에 처하고 근로자는 실직상태에 몰렸다. 그런데 입주기업들은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북한 핵무기 개발을 원조한 기업으로 불명예 낙인이 찍히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개성공단 기업인 A업체의 B부장은 "아직도 개성에 두고 온 생산시설이나 완제품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일주일이라도 철수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손실이 크게 줄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A업체는 정부 발표 다음날 겨우 재고의 10%에 불과한 한 트럭분의 생산제품을 들고 왔을 뿐 생산시설 및 완제품, 각종 원부자재는 고스란히 두고 왔다. 조금은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북한이 바로 폐쇄조치를 하는 바람에 직원들도 겨우 몸만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A업체가 개성공단에 입주한 것은 10여년 전이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개성공단은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물류와 인건비 절감 등의 장점이 있었다. 물론 정부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북한 노동자들은 생각한 것보다 숙련되지 못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저렴한 노동력으로 높은 이익률을 바로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큰 오산이었다. 숙련되지 못한 북한 노동자들 때문에 이익은커녕 손실만 누적됐고 2~3년 전부터서야 겨우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A업체는 아직 누적결손금을 다 털어내지 못했다.

게다가 초창기에 북한 측과 크고 작은 다툼이 많았다. 노동자들의 사고방식이 아직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에는 경직돼 있었으며 북한의 내부 간섭도 심했다. 노동자들은 휴대폰이나 인터넷 사용이 허용되지 않았고 2인1조의 엄격한 감시를 받았다.


A업체는 노동자의 능력에 따라 보너스나 다른 복지혜택을 주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월급마저 노동자들에게 직접 나눠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너스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나마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주는 건 허용됐다.

초코파이와 관련해선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았다. 간식으로 나눠주던 초코파이가 큰 인기를 끌면서 초코파이가 비공식 보너스라는 얘기가 나돌았고 북한 내에선 초코파이가 밀거래까지 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초코파이가 널리 퍼지자 북한에서는 '쵸콜레트단설기'라는 짝퉁제품을 내놓기까지 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초코파이로 국을 끓여 먹는다" 등 남한에서 떠도는 이야기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입주기업이 제공하는 간식이나 식사, 입주기업 관계자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남한의 경제적 풍요로움을 은근히 부러워했다.

이처럼 입주기업을 통해 물자가 유통되면서 남한의 경제발전을 알게 된 북한에서도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학습의 장이 조금씩 열렸다.

"그러면 뭐합니까. 나름 경제협력뿐 아니라 남북한 긴장완화와 북한 개방화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우리를 마치 북핵 개발을 원조한 것처럼 취급하는데 너무 속이 터집니다." B부장은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일부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억울한 심정이 더 크다고 하소연 했다.



갑작스런 개성공단 폐쇄로 입주기업들은 공장과 기계 등 설비시설과 재고자산에 대한 직접적 손실은 물론 생산물량 확보를 제때 못해 거래처를 잃게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새로 생산시설을 마련한다고 해도 들어갈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노동자에게 지급한 급여가 북핵 개발에 쓰여졌다는 당국의 발표와 일부 따가운 시선 때문에 손실 보상 얘기조차 드러내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나마 A업체는 개성공단 외에 다른 생산라인이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오로지 개성공단 한 곳에 생산시설을 갖춘 여타 중소기업들은 개점휴업 상태로 도산에 직면해 있다. 일부 기업은 2013년 1차 개성공단 폐쇄 때 받은 대출금도 다 갚지 못한 상태에서 또다시 이런 일을 당해 대출금 상환 마련에 걱정이 태산이다.



남북경협보험의 경우 손실액의 90% 범위내에서 보상금을 지급하지만 그것도 한도가 70억원이라서 A업체와 같이 100억원을 훨씬 넘게 투자한 기업들은 초과액을 고스란히 날려야 할 판이다. 게다가 원부자재, 재공품, 완제품 등 유동자산에 대한 보상은 제외돼 현재대로라면 손해액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기존의 남북협력기금 대출 금리를 2% 이상에서 1.5%로 인하하고 기업 당 입지매입비 지원액도 최대 5억원에서 30억원으로 높이기로 하는 등 다양한 경제적 지원책을 강구 중이지만, 이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받은 실질적인 피해 보상엔 미흡하다.

현재 A업체 같은 처지에 놓인 입주기업 123개와 2000명의 개성공단 직원, 5000여개의 협력업체가 있다. 지금 이들에게는 북한 핵무기 개발 원조 기업이라는 불명예 낙인이 아닌 '우리기업 살리기'라는 경제적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