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월세, 2년새 400만원" 잔인한 '임대료 풍선'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16.03.1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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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급등에 홍대서 상수동으로 온 카페들 "또 쫓겨나지 않겠다, 방법 강구중"

@머니투데이 유정수 디자이너@머니투데이 유정수 디자이너


서울 마포구의 와우산로3길 골목은 홍대 앞의 어느 한 골목을 옮겨 놓은 것처럼 개성있는 카페와 스튜디오들이 곳곳에 있다. 홍대 앞 골목을 따라한 것이 아니라 실제 서교동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이 상수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연스레 비슷한 분위기의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이들이 홍대 앞 '핫플레이스'에서 상수동의 한적한 골목으로 이사온 것은 급격히 오른 임대료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홍대 클럽문화가 활성화되자 서교동 일대 임대료도 폭등했다. 골목의 터줏대감으로 홍대 문화를 이끌었던 카페들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다.



1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교동을 떠나 상수동에 자리를 잡은 임차상인들은 최근 급격히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또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신흥 상권을 형성하고 '뜨는 골목'을 만들었더니 임대료가 오르고 상인들은 나갈 수밖에 없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반복된 것이다.

2009년 서교동에서 상수동 와우산로3길로 옮겨 온 이리카페의 경우 최근 2~3년 동안 임대료가 법정 기준 이상으로 급등했다. 김상우 이리카페 대표는 "처음에 왔을 때는 월임대료가 200만원 초반 이었는데 지금은 400만원이 넘었다"며 "건물주가 해마다 50만~60만원씩 인상을 요구하는데 도리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 임대료 인상률은 9%를 초과할 수 없지만 건물주는 이를 무시했다.



이리카페는 비슷한 상황으로 이미 서교동에서 한번 쫓겨난 경험이 있다. 2004년 서교동에 처음 문을 연 뒤 작품 전시와 인디밴드 공연이 함께 이뤄지는 문화공간으로 홍대의 명소가 됐다. 건물주는 해마다 무리하게 임대료 인상을 요구했고 급기야 "조카가 카페를 하고 싶어 한다"며 이리카페를 내쫓았다.

이리카페를 찾는 단골손님을 위해 멀리 가지 못하고 근처 임대료가 저렴한 상수동에 다시 자리 잡았다. 이리카페가 와우산로3길에 가게를 열었을 때 이 골목은 다가구·다세대주택과 낡은 창고 건물만 있던 평범한 동네였다. 이리카페를 시작으로 2009~2010년 서교동 카페들이 줄지어 이사오면서 어느새 뜨는 동네가 됐다.

이리카페와 같은 골목에서 장사를 하는 김남균 그문화다방 대표는 "개성있는 카페들이 들어와 골목을 살렸는데 건물주는 장사가 안 되는 카페보다 테이블 회전율이 높은 술집, 식당을 원했다"며 "최근 2~3년 동안 몇몇 카페가 문을 닫았고 일본식 선술집들이 들어섰다. 몇 년만 더 지나면 이곳도 옷가게나 술집이 잔뜩 들어선 개성없는 골목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이리카페의 건물주가 바뀌면서 이 골목의 불안감은 더해졌다. 김상우 대표는 "임대료가 여기서 더 오르면 버틸 수가 없다"며 "새로 온 건물주가 또 임대료를 올리면 다른 건물의 임대료도 줄줄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 카페골목의 임대료가 최근 몇 년 간 급격히 오르면서 몇몇 카페들이 문을 닫고 술집과 음식점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사진=김사무엘 기자서울 마포구 상수동 카페골목의 임대료가 최근 몇 년 간 급격히 오르면서 몇몇 카페들이 문을 닫고 술집과 음식점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사진=김사무엘 기자
임대료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게는 이리카페뿐이 아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상수동 상가 평균 임대료는 1㎡ 당 3.52만원으로 홍대상권(3.68만원)에 육박했다. 최근 3년 동안 인상률은 42.8%로 홍대(31.3%)보다 높았다.



서울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11월 건물주-상인 간 상생협약과 장기안심상가 도입 등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지역별 민관협의체를 중심으로 상생협약을 유도한다는 방침이지만 강제성이 없고 지금까지 협약이 성사된 곳도 종로구, 서대문구, 성동구 등 소수에 불과해 실효성이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전담조직이 있는 곳도 성동구 1곳뿐이다.

시 관계자는 "건물 리모델링비를 지원하는 대신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장기안심상가 등으로 상생협약을 유도하고 있다"며 "자치구에서는 이제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단계라 실행에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김남균 대표는 "이제는 서교동에서처럼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상인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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