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죽음 앞에 선 인조인간 로이 배티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유언은 인류가 신세기에 맞이하게 될 끔찍한 저주의 전조(前兆)처럼 울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의 마지막 장면은 엄숙하고 처연하다. 끊임없는 산성비와 반젤리스의 음악'티어즈 인 레인(Tears In Rain)'이 함께 흐르는 가운데 로이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죽는다.
영화 '블레이드러너'. 2019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인조인간의 탄생으로 빚어지는 인간의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아무런 위화감 없이 인간의 정서에 다가가는 감정 로봇도 등장했다. 귀엽고 따뜻한 이미지의 이들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 '위안'의 행위가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든 진심에 의한 것이든 고독한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무인자동차'들로만 가득 한 도로를 보는 것도 그리 멀지 않았다. 수많은 버스, 택시, 택배기사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손해보험사들의 이익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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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선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인해 앞으로 5년안에 일자리 500만개가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머지 않아 우리는 기계와 취업 경쟁을 해야 하고, 로봇을 상사로 모시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판단에 따라 인간이 일을 하는 시대.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전세계 네트워크를 장악해 큰 돈을 번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같은 대 자본가와 일부 엘리트 과학자들은 열심히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미래에 대해 "괜찮을 것(It'll be OK)"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효율성'과 '편의성'의 잣대로 보는 그들에겐 돈의 논리가 더 가깝다. 이들과 이들이 만든 로봇 중에서 누가 더 인간적일까. 누가 더 인간에 가까울 것인가.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것이 두 가지 더 남았다. 하나는 군수업자들이 만드는 전쟁용 로봇이고, 또 하나는 포르노업자들이 만드는 섹스용 로봇이다. 두 가지로 인해 인류는 소행성 충돌보다 더 위험한 멸종의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알파고와의 첫 대국에서 충격적인 불계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의 심각한 표정을 본다. 그리스 문자의 첫 단어인 '알파'는 모든 것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것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우리는 어렸을 적 상상도 못했던 것을 보고 있다. 이 모든 기억들은 다른 것들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실수투성이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