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샘의 포스트카드] 잘 낡은 절 하나, 이발소 하나

머니투데이 김보일 배문고등학교 국어교사 2016.02.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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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어찌하다 아이패드를 하나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완전 밥도둑, 아니 시간도둑입니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다 날 새는 줄도 모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평소 이런 저런 글을 쓰던 차에 조금은 건조한 느낌의 디지털 그림에 아날로그적 논리나 감성의 글을 덧붙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과 색이 언어의 부축을 받고, 언어가 선과 색의 어시스트를 받는, 글과 그림의 조합이 어떤 상승작용을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보일샘의 포스트카드’를 보시는 재미가 될 것입니다. 매주 월, 수요일 아침, 보일샘의 디지털 카드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따듯한 기운과 생동감을 얻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구는 사랑을 나누기 알맞은 행성입니다.

[보일샘의 포스트카드] 잘 낡은 절 하나, 이발소 하나


시인 안도현은 완주 불명산에 있는 화암사를 두고 잘 늙었다고 표현했다. 잘 늙었다는 것은 비바람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뜻이겠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맞은편에도 잘 늙은 이발소가 하나 있다.

1927년에 개업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공덕동 성우이용원에서는 아직도 연탄난로가 양동이의 물을 끓인다. 주인장 이남열씨는 전형적인 아날로그형 인간. 아직도 이발가위와 면도칼을 숫돌에 갈아 쓴다. 오래된 라디오에서는 눈물젖은 두만강이나 신라의 달밤이 흘러나와야겠지만 아쉽게도 걸그룹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선데이서울’이라는 잡지도 없고 기계충에 걸려 머리를 ‘땜빵’한 아이들도 없다.



낡음을 낡음답게 그려낼 줄 모르는 내 둔한 솜씨 탓에 성우이용원이 오늘은 좀 번드르르해졌다. 세상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자라남을 멈추지 않는데 이남열씨는 자꾸 늙어가신다. 그래도 가위질 솜씨만은 여전히 쌩쌩하시다.

[보일샘의 포스트카드] 잘 낡은 절 하나, 이발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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