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양의 한인촌 서탑가(西塔街) 풍경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모르는 사람들 틈에 섞여 떠나는 패키지여행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불가피하게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해 늦봄에 다녀온 백두산 여행이 그랬다. 여행보다는 관광에 가까웠지만, 개인여행이 쉽지 않은 곳이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동행한 참이었다. 까까머리 시절 이후 수십 년 만에 함께 떠나는 여행은 과거로 돌아가는 열차라도 탄 듯 설렘을 동반했다.
저녁 무렵 가이드가 식당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말로만 듣던 북한식당이었다. 중국을 몇 번 오갔지만 북한식당에서 식사할 기회는 없었다. 거부감이 들 이유 같은 건 없었고, 되레 좀 반가웠다. 하지만 연세가 지긋한 몇 분은 무척 당황한 표정이었다.
내내 표정이 굳어있던 어른 한 분이 종업원을 불러 “김치만 갖다놓고 음식은 언제 줄 거냐”고 과도할 정도로 언성을 높였다. 종업원의 표정이 거북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가 나가자 이번엔 가이드가 불려와 경을 쳤다. “왜 북한식당으로 왔느냐”가 핵심 내용이었다. 자신은 북한의 ‘북’ 자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진다는 것이었다. 가이드가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아니고 중국인이 북한 여성들을 고용했을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고성과 짜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집권자가 밉다고 타국에 돈 벌러 나온 사람들까지 미워할 건 뭐람? 다른 일행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에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처음 보는 사이고 인사를 나눌 틈도 없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니 분위기는 썰렁하다 못해 싸늘하게 변했다. 북한 종업원은 아예 들어올 기미가 없고 가이드만 불난 집 며느리처럼 들락거린 뒤에야 음식이 나왔다. 모두들 묵묵히 밥을 떠 넣었다. 좋은 기분으로 떠난 여행의 첫 식사가 이 모양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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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쪽에서 바라본 압록강 건너 북한 땅/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압록강에 도착해서야 그분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강가에는 식당에서 고함을 지르던 사람이 아니라, 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짓는 노인이 서 있었다. 빈손으로 쫓기다시피 떠난 고향, 뻔히 보이는데도 건너갈 수 없는 저곳….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한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는데 그 모습으로 충분했다.
모처럼 떠난 패키지여행에서도 배울 것은 참 많았다. 여행은 동행자라는 이름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