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과학]사과의 물리학

머니투데이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학과 교수 2016.01.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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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아무 조건이 없을 때 땅과 만날 수 있다"

사과(沙果): 사과나무의 열매
사과(謝過):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사과는 선악과(善惡果)일 때 지혜를 상징하지만, 신의 분노를 일으키는 악마의 물건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불쌍한 뱀은 평생 땅을 기어 다니게 되었다. 백설공주가 베어 문 사과에는 계모가 넣은 독이 들어있을 뿐이다.

하지만 컴퓨터의 아버지 튜링이 굳이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한 것은 사과가 선악의 지혜를 의미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애플사는 베어 문 사과를 로고로 쓰는 것이 튜링과 관계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무튼 이제 베어 문 사과는 세계 IT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사과에는 이렇듯 복잡한 의미가 들어있다.



물리에서도 사과는 특별하다. 뉴턴의 중력이론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이 떨어지는 사과와 함께 탄생했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뉴턴의 사과 이야기야말로 근거 없는 전설이라는 것도 사람들은 알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사과는 뉴턴이고 뉴턴은 사과다.

TV 과학프로그램의 이름에 종종 사과가 들어가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뭐 사과면 어떻고 포도면 어떠랴. 그것이 무엇이든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중력 때문이다. 그러면 달은 왜 안 떨어지나? 누구나 가졌을 이런 질문에 답이 없었을 리 만무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세상은 둘로 나뉜다. 천상계와 지상계다. 천상계의 운동은 완벽하고 영원하며, 지상계는 불완전하고 일시적이다. 그러니까 달 뿐 아니라 태양과 모든 별들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 원 운동을 하는 거다.

뉴턴은 여기서 엄청난 도약을 한다. 달도 사과처럼 추락하고 있다. 추락하는 달은 날개가 없다. 그러면 왜 안 떨어지냐고? 떨어지고 있다니까. 달은 단지 추락하는 방향과 직각으로 즉 수평방향으로 속도가 있어서, 추락하며 동시에 수평방향으로 움직인다. 지구가 편평했다면 투수가 던진 공처럼 결국 달은 땅 바닥에 떨어졌을 거다.

하지만 지구는 둥글다. 달이 낙하하면서 동시에 수평으로 이동한 정도가 지구의 곡률과 정확히 일치하여 계속 추락하면서도 땅에 닿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쯤 되면 미쳤거나 천재다. 물론 뉴턴은 천재다. 사실 뉴턴의 중력이론에서 주인공은 사과가 아니라 달인 셈이다.


세상에는 또 다른 종류의 사과가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잘못의 정도가 큰 경우 '사죄'라고 한다. 진심으로 하는 사과는 용서를 끌어낼 수 있다. 잘못된 사과는 오히려 분노를 일으키는 악마의 물건이 되기도 한다. 사과에도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백설공주의 목숨을 노린 계모가 제대로 사과를 했으면 달궈진 쇠구두를 신은 채 끔찍하게 죽지는 않았을 거다. 튜링을 자살로 내몬 영국정부는 2009년에야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의 사후 55년이나 지난 것이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일본군 위안부합의 문제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전쟁이 끝나고도 55년이 지난 1990년대 들어서다. 이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부상하자 일본정부는 1993년 고노담화를 발표하여,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다.

하지만 이후 일본이 보인 행동은 고노담화의 내용과 모순된다. 고노담화 직후인 1994년에는 위안부 문제가 거의 모든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실리지만, 2011년에 이르면 모조리 사라진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위안부 생존자에 대한 배상문제는 복잡하다. 일본은 1965년 박정희 정권과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으로 일제강점기에 대한 보상을 완료했다고 주장한다. 우리정부도 위안부문제에 대해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었다. 따라서 이슈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후속조치다.

결국 이번 위안부합의는 잘못된 것이다. 첫째, 진정성 있는 사과가 아니었다. 고노담화 이후 일본이 보인 행동에 어떤 진정성이 있었는가? 최근 바뀐 것이 있는가? 이번 합의는 고노담화만도 못한 수준이다. 더구나 우리정부가 쓴 '불가역'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굴욕적이다.

둘째, 어차피 보상은 처음부터 핵심이 아니었는데, 이것이 부각되어 피해자들을 두 번 욕보이는 결과가 되었다. 셋째,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다. 영화 '밀양'에는 자식을 살해당한 여인이 나온다. 회개하여 신의 용서를 받았다는 살인자의 말을 듣고, 여인은 절규한다. "도대체 누가 누굴 용서한다는 말인가."

사과는 아무 조건이 없을 때 땅과 만날 수 있다. 달과 같이 수직방향의 속도가 있으면 땅과 영원히 평행선을 그리게 된다. 자신은 낙하한다고 주장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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