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에게 대우증권 인수가 필요한 이유

머니투데이 이병찬 이코노미스트 2015.12.2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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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르기]단순한 시너지를 넘어 금융빅뱅의 필수요건

편집자주 변동성이 점점 커지는 금융경제 격변기에 잠시 숨고르며 슬기로운 방향을 모색합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대우증권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가 24일을 전후하여 결정될 전망인 가운데 21일 마감한 인수희망자 중 미래에셋증권이 2조원대 중반으로 응찰, KB금융과 한국투자증권을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적인 평가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가격 변수가 가장 중요한 만큼 미래에셋증권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셈이다. 누가 되든 우리나라 증권회사의 상징격인 대우증권 (7,550원 ▲220 +3.00%)을 가져가면 금융업권의 판도는 바뀐다. 증권업계는 지금까지 없던 자본금 7~8조원의 메가 증권사가 탄생할 수 있고, 은행업계는 기존 금융지주사를 위협하는 강력한 금융그룹이 탄생하게 된다



금융권의 지형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딜인 만큼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발전을 고려한 거시적이고 발전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면서 KB금융에게 대우증권 인수가 왜 필요한지 몇 가지 꼽아 보자.

금융 산업의 모든 파생 시너지는 금융의 핵심 기능인 결제 기능에서 나온다. 과거 감독 기관의 인허가를 기반으로 업권 내 경쟁에 머물던 금융산업이 지금은 ICT혁명이 초래한 생산성 향상과 더불어 저성장 경제체제의 고착화로 말미암아 기업금융 및 소비자금융 등 전 분야에서 수익성과 성장성 악화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기관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조정 압력은 이를 여실히 반영한다.



여기에 혁신적 ICT로 무장한 핀테크 업체들이 전통적 금융기관이 제공하지 못하는 창의적 서비스로 금융 소비자의 폭발적 호응을 이끌어 내면서 금융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감독기관은 이들이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를 후행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규정 해석과 개정 작업에 바쁘다.

크라우드펀딩, P2P금융, 모바일 간편결제 및 송금, 온라인 보험수퍼마켓, 로보어드바이저, 인터넷은행 등 숨돌릴 틈 없이 금융산업 외곽으로부터 침범해 오는 핀테크산업에 대응하기 위하여는 기존의 은행·증권·보험과 같은 금융업권이나 금융기관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자연스럽게 각 금융업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금융 소비자의 니즈 충족을 위한 금융 기능 중심으로 금융 산업이 재편될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주도권은 핀테크 업체로 옮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직은 금융 빅뱅의 초기 단계이다. 기존 금융 산업이 가진 기초 인프라를 중심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현재의 금융 주도권을 유지하면서 금융 빅뱅을 선도할 여지는 있다.


금융의 원초적인 인프라는 자금 결제 기능이다. 자금 결제 기능과 시스템 및 이용자는 은행 산업이 장기간 구축한 핵심 자산이자 동력이다. 따라서 은행 소비자를 가장 많이 보유한 KB금융이 증권 소비자마저 확보하는 경우 금융 혁명의 주체로 자리매김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배가 시킬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은행 계열 금융 지주가 증권 자회사를 통하여 CIB(Corporate & Investment Banking) 체제를 오랜 기간 구축하고 강화해온 측면이 있으나 KB금융은 타 금융 지주에 비하여 증권 자회사와의 협업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1998년 합병한 한국장기신용은행의 전문 인력과 기업금융 전통을 성공적으로 계승하면서 기업 여신 및 투자 기능을 은행 중심으로 전개한 데 따른다. 그러나 저성장 경제구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여신 시장이 쇠퇴하고 기업고객을 중심으로 하는 증권화 및 인수합병, 사모투자 시장이 확대되면서 증권업의 대형화를 통한 시너지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글로벌 경제 및 산업의 변화는 금융기관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웬만한 금융 경쟁력으로는 글로벌 IB시장에서 영업은 고사하고 수익을 내기도 힘들다. 더구나 돈이 되는 딜들은 리스크가 수반된 대규모 자본 투입이 필수적이다.

이런 글로벌 시장에서 취약한 자본력과 어설픈 리스크관리 능력으로는 명함조차 내밀기 어렵다. 날로 전문화, 대형화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그나마 금융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은행의 자본력을 기반으로하는 CIB모델의 확장이 더 유리해 보인다.

마지막은 대우증권 (7,550원 ▲220 +3.00%) 전문인력의 발전적 활용이다. 금융투자협회 통계를 보면 최근 3년간 증권사 임직원 수가 올해 9월 기준으로 7천명 정도 줄었다. 증권업의 쇠퇴에 따른 불가피한 자구책임을 감안하더라도 수십년간 전문성을 축적한 고급 인력이 사장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특히 대우증권의 경우 우리나라 증권업의 인재 사관학교로 알려져 있다. KB금융에게 이들은 잉여가 아니라 확실한 성장동력이 될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구조조정의 여파가 적다는 차원을 넘어 글로벌 금융 빅뱅에 대처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전문 인력을 영입하는 차원에서 KB금융에 기여할 부분이 상당해 보인다.

KB금융이 대우증권을 인수하게 된다면, 기존의 은행 중심 금융 지주가 보여주고 있는 증권 자회사에 대한 전략적 포지셔닝의 안일한 인식과 무관심에 일침을 가함과 동시에 금융 지주들의 위기 의식과 자발적 경쟁을 자극하여 우리나라 금융 산업이 한 단계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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