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시대 '인문학 버리기' 열풍 분 미국, 그 결과는?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2015.11.2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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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파리드 자카리아 '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IT 시대 '인문학 버리기' 열풍 분 미국, 그 결과는?


유명 디자이너 베라 왕, 존 레논의 아내 오노 요코, 영화 ‘미션 임파서블’ 제작자 J.J. 에이브럼스가 나온 대학. 뉴욕의 세라 로런스 칼리지는 미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대학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대학은 학생을 뽑을 때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 점수를 가지고 평가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신 성적과 작문 실력만 보고 평가한다.

이 대학의 졸업 축사에서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국제정치학자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교양 교육’이 대학에서 왜 필요한지를 연설한다. 그리고 열광적인 반응에 “깜짝 놀랐다”고 회고한다. 그 현상은 낮에는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밤에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IT 회사를 창업해 공개해야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쫓는 현실이다 보니 인문학을 자랑하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조차 교양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오죽하면 책 제목을 미국의 최고 수재들이 모이는 하버드대생들이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고 꼬집었을까.



파리드 자카리아는 이 연설에서 언급한 내용을 책으로 쓰기로 한 뒤 자신의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를 차분히 풀어나간다. 인도에서 나고 자라 ‘예일’이라는 단어를 발음조차 하기 힘들었던 한 10대 소년이 미국의 대학에 입학해 교양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느꼈던 ‘천지개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신입생 동안 내내 나는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훈련을 나름대로 시작했다. 무척 힘들었다.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정말 많은 시험을 치렀지만, 주관적인 글을 쓴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인도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까닭에 암기한 내용을 그대로 쏟아놓는 데는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예일대에서 다른 학생들에 비해 훨씬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 뒤 말하는 일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

배움의 틀을 완전히 뒤집는 교육 끝에 그는 생각하고, 말하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됐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교양 교육, 즉 인문학은 시대가 바뀌어도 그 가치가 절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래학자나 혁신 전문가 등의 보고서 및 그들이 수행한 실증적인 실험들을 근거로 내세운다.

저자는 MIT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아우터의 “융통성과 판단 및 상식이 필요한 일은 자동화하기가 가장 힘든 일로 입증됐다. 이런 일을 컴퓨터는 유치원생보다 제대로 해내지 못 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인간의 능력은 컴퓨터의 계산 가능 범위 밖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구문이 아닐까. 이는 서양과 동양이 느끼는 시대적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데서 발생한 차이다. 기술과 과학 중심으로만 교육해왔던 동양은 ‘애플’의 성공으로 대변되는 인문학적 감수성의 부족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았고, 인문학적 교육을 중시해 온 서양은 수학 등 아시아에 뒤지는 분야에 두려움을 느껴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교육 관련 연설에서 꾸준히 ‘한국 교육’을 극찬한 것에서도 이를 유추할 수 있다. 암기와 계산능력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우리의 주입식 교육은 국내에서는 언제나 비판받지만, 인문학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교육’을 전통적으로 해오다 기술 중심 시대를 맞은 미국에서는 거꾸로 벤치마킹해야 할 모델로 보이는 것이다.

사정이 극단적으로 다른 만큼 이 책에 서술된 교육계의 현실은 우리나라에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의미는 충분하다. 저자는 기계가 많은 것을 대체하는 와중에도 문화, 예술 등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치창출의 영역이 아주 많다고 말한다. 특히 인문학 지식을 머리에 넣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능력을 기르는 훈련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강주헌 옮김. 사회평론 펴냄. 248쪽/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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