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의 내부자들] ② 경찰의 단서…서울시향의 ‘윗선’ 개입 의혹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5.11.2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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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팩트] 경찰조사로 다시 본 서울시향 사건…'윗선' 개입 증거 드러난 듯

편집자주 지난해 12월 초 서울시향 직원 17명이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대표를 성추행과 욕설을 한 안하무인 인격체로 몰아세우는 호소문을 발표했고, 언론들도 하나같이 호소문을 근거로 그녀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그럴듯한 주장과 내용은 다수의 구체적 진술로 힘을 얻었고, 1인이 방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추정이 사실로 둔갑하는데 힘을 실은 언론 보도는 지난 9월 현재, 160개 매체 3000여개에 이른다. 호소문에서 보여준 서울시향의 ‘내부자들’은 막강한 단합력으로 모두 입을 맞춘 듯 했으나, 막상 경찰 조사에선 서로 다른 말로 주장의 신빙성이 점점 떨어졌다. 사실이 뒤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번엔 다수의 주장과 호소문이 아닌, 박 전 대표의 인터뷰와 경찰 수사를 토대로 진실의 줄기를 좇았다.

일각에선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이유를 정명훈 예술감독과의 불화에서 찾는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갈등을 겪은 것은 아니다. 1년간 공석이던 서울시향 대표에 적임자로 박 전 대표를 꼽은 이 중 하나가 정 감독이었다. 사진은 2014년 1월 16일 종로구 세종로 서울시향 연습실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 2014년도 신년 기자간담회’. 정 감독이 그해 오케스트라의 발전 및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박현정 대표, 정명훈 예술감독, 진은숙 상임작곡가/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일각에선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이유를 정명훈 예술감독과의 불화에서 찾는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갈등을 겪은 것은 아니다. 1년간 공석이던 서울시향 대표에 적임자로 박 전 대표를 꼽은 이 중 하나가 정 감독이었다. 사진은 2014년 1월 16일 종로구 세종로 서울시향 연습실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 2014년도 신년 기자간담회’. 정 감독이 그해 오케스트라의 발전 및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박현정 대표, 정명훈 예술감독, 진은숙 상임작곡가/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


지난 8월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있었더니, 엉뚱하게 일이 돌아가더라.” 새삼 그가 쓴 ‘엉뚱하게’라는 부사가 생뚱맞게 다가왔다. 박현정 서울시향 전 대표의 막말과 욕설, 성추행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는 가운데 터진 그의 고액 연봉 논란, 항공료 횡령 의혹이 ‘엉뚱하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쉽게 물러설 것처럼 보였던 시향 대표가 좀처럼 물러서지 않고 자신을 향해 ‘반격’하는 모양새가 ‘엉뚱하다’는 얘기인가.

1년 전, 세간의 비난은 박 전 대표에게 쏠렸다. 직원들의 성추행 문제 제기 하나만으로 이미지가 추락한 박 전 대표는 모두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정명훈 감독의 사조직과 비리’ 문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가 꼬박 1년을 끈질기게 결백을 주장하면서 경찰의 무혐의 판정을 받아내는 동안, 정 감독의 항공료 의혹은 더 불거졌고, 그의 앞뒤 안 맞는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이 사건이 정 감독 측근에서 야기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사건의 중심은 이제 정 감독 등 ‘윗선’으로 향하고 있는 셈이다.



◇ 정 감독의 앞뒤 안 맞는 언행…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박 전 대표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데에는 정 감독과의 불화가 원인이라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불화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박 전 대표는 그 시작을 ‘박00’이라는 이름 석 자에서 찾았다.



박 전 대표에 따르면 박씨는 정 감독 막내아들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2005년 정 감독이 서울시향 예술감독으로 오면서 당시 59세인 박씨도 함께 왔다. 당시 이팔성 서울시향 대표가 50세 입사 규정을 위반할 수 없다며 거부했지만, 정 감독의 도움으로 박씨가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박씨는 매년 10억씩 3년간 30억씩 협찬금을 따오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박씨는 서울시향의 협찬금을 구하는 대신 정 감독의 개인재단인 ‘미라클 오브 뮤직’의 협찬을 따오기 위해 서울시향 명함을 이용한 것이라고 박 전 대표는 주장했다.

여기에 2013년 서울시 감사과의 정년 제도 도입 문제 제기로 70세를 코앞에 둔 박씨의 퇴직이 현실화하자 정 감독이 다시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프랑스 출장에 가서도 박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박씨의 복직을 요구했고, 박 전 대표는 “서울시 결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2014년 6월 정 감독은 저녁 식사 자리에 박 전 대표를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정 감독은 “박00을 다시 데려오라”며 소리를 질렀다는 게 박 전 대표의 전언이다.

정 감독은 서울시향 예술감독을 맡은 지 10년째인 지난해 12월 연습실에서 박 전 대표와의 갈등, 자신의 횡령 부분에 대한 해명으로 이렇게 말했다. “원래는 난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그런 것 모르는 사람이에요. 집안에서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말도 안되는 소리로…. 거기가 내가 무슨 문제가 있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왜 그렇게 박씨 문제에는 열의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는지 의구심이 가는 대목이다.

항공료 횡령, 개인 리사이틀 개최, 과도한 연봉, 정 감독 소속사 ‘아스코나스 홀트’의 일감 몰아주기 등 갖은 의혹에 정 감독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지만, 직원들의 호소문에는 “직원들이 불쌍하다”며 적극 나서고 있어 대조적이다.

박 전 대표는 정 감독을 만나면 “멋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고 말했다. 면전에서 부정이나 거절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늘 긍정적인 마인드로 고개를 끄덕인다고도 했다. 이를테면 서울시향의 미래를 위해 수석 객원지휘자 섭외 문제를 들고 나오면 정 감독은 늘 “언제든지 환영합니다”라고 말한 뒤 “(공연기획 자문) 마이클 파인과 협의하세요”라는 똑같은 결론을 낸다고 했다. 파인의 결론도 똑같다. “그 사람은 비싸다” “연락이 안된다” 등으로 거절한다는 것이다.

◇ 박 전 대표는 걸림돌이었나…‘윗선’ 개입 증거

지난 8월 대질조사에서 나온 증거는 구속영장이 청구된 ‘성추행 조작의혹’의 K씨를 ‘섭외’한 문자만이 아니었다. 여기에선 이 사건에 개입한 ‘윗선’의 흔적도 함께 발견됐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증언이다. 직원 17명의 마음을 쥐락펴락한 ‘윗선’의 명단 일부를 경찰이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는 정 감독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신념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직원과 단원 모두 정 감독에 대한 신뢰가 투철하고, 서울시향 대표 3명이 바뀌는 동안 1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성의 능력이 그렇고, 재계약 때마다 서울시가 정 감독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는 정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강해보이는’ 여성 대표가 원칙을 내세우며 변혁의 바람을 일으키려는 노력이 안정을 뒤흔드는 불안의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시향 안팎의 평가다.

한가지 확실한 건 정 감독은 절대 나서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휴대폰도 없고, 이메일도 하지 않는다. 그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는 부인 구순열씨와 비서 백모씨를 통해야만 한다. 박 전 대표는 직원들이 호소문의 내용을 정 감독에게 알리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에 대해 “정 감독이 왜 내게 그 내용의 진위여부를 말하지 않고 서울시장에게 먼저 흘렸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고 했다.

정 감독은 이에 대해 직접 말하지 않았다. 다만 서울시향 관계자는 “호소문을 언론에 배포하기 전에 정 감독이 박 전 대표와 만났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호소문이 아니라, 단원 평가에 대한 직원의 실수 문제로 만난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1년여간 공방이 벌어진 ‘사실 싸움’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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