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사진 왼쪽)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과 집필진 구성안 등에 대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신 교수는 역사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참여한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내 공언한 '공정하고 투명한 집필'은 사실상 물 건너가 이렇게 나온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일선 학교 현장에서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일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상고사)와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고대사)를 대표집필진으로 초빙했다고 밝혔으나, 이미 내정된 근·현대사 필진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근·현대사 연구자 500여명의 회원을 둔 한국근현대사학회를 비롯해 상당수 대학 사학과 교수들이 집필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에 비춰봤을 때 정치·경제·군사학자가 보안각서를 쓰고 이 부분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교육부는 2013년 친일·독재 미화 논란에 휩싸인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파동 당시 다른 7종의 교과서까지 물타기식으로 수정명령을 내리면서 이를 위해 구성한 '수정심의위원회'에게 보안각서를 받은바 있다.(관련기사☞[단독] 한국사 교과서 수정심의위원회 '보안각서' 제출했다)
서약서에는 '인지한 각종 사안 및 심사에 참여한 동료 심의위원의 개인 정보 등을 심사 중은 물론 심사 후에도 주위에 알리거나 공표하지 않겠다'고 명시됐다. 어길 경우에는 '개인정보 공개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질 것을 서약한다'고 못 박아 놓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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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와 국편은 적당한 시점이 되면 집필진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나 교육계 안팎은 근·현대사의 사회적 파장을 감안하면 교과서가 이미 완성된 다음에 명단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교육당국은 재작년 교과서 수정심의위원회를 만들며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 위원회 명단은 학교가 채택을 마치는 즉시 공개할 것"이라고 서남수 당시 교육부 장관이 직접 밝혔다. 그러나 무려 2000여 건(고교 한국사 8종)이 넘는 각종 내용 수정을 하고서도 끝내 공개하지 않고 버티다가 고교 한국사 7종 집필진들이 낸 행정소송 중 재판부의 명령에 따라 명단을 제출하면서 드러났다. (관련기사☞[단독]한국사 교과서 수정심의위 명단 결국 공개)
당시 교육부 측 변호인은 재판부에 "위원회 명단을 제출하는 대신 외부에 유출하지 말아달라"고 서면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전례에 비춰봤을 때 이번에도 민감한 근·현대사 필진은 보안각서를 명분으로 미루고 미루다 '집필종료'와 동시에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서울의 한 대학 사학과 교수는 "국정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2013년 교학사 사태와 비슷하다"며 "과연 이렇게 만든 교과서가 정부 뜻대로 권위 있는, 올바른 교과서로 자리 잡을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