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키즈’와 ‘C4J0K21O19’ 암호의 비밀

머니투데이 홍찬선 CMU유닛장 2015.10.22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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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이코노믹스]<18>'노벨상 제로' 한탄 말고 공자와 세종에게서 배우자

편집자주 세계 문명이 아시아로 옮겨오는 21세기에 공자의 유학은 글로벌 지도 이념으로 부활하고 있다. 공자의 유학은 반만년 동안 우리와 동고동락하며 DNA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이에 공자라면 얽히고설킨 한국 경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그 해답을 찾아본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공은 둥글고 승패는 경기가 끝나야 알 수 있다. 축구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항상 지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높은 벽, 브라질을 한국이 이겼다. FIFA(국제축구연맹) 남자 U-17(17세 이하) 월드컵 얘기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최진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U-17 대표팀은 18일 아침(한국시간) 칠레 코킴보에서 열린 ‘칠레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브라질을 1대0으로 이겼다. 한국 남자 축구가 브라질을 이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실력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맞붙어 싸울 기회도 드물었고, 모처럼 경기를 해도 모조리 패했다. 실력 차이도 있지만 ‘주눅이 들고 열등감(컴플렉스)이 작동하기 때문’이었다.



◇한국 U-17 축구 대표팀 사상 처음으로 브라질 이겨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브라질을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브라질은 치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코킴보의 기적’을 만들어 낸 U-17 대표팀은 ‘박지성 키즈’로 불린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을 차지했을 때 불과 4살에 불과했던 대표팀 멤버들은 박지성이 영국 프로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축구의 꿈과 실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키즈’는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LPGA(여자프로골퍼협회)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박세리 키즈’들이 대표적이다. 1997~98년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박세리가 LPGA US오픈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림으로써 희망의 불씨를 보여줬다. 요즘은 LPGA 시합 때마다 상위 10위를 한국 선수들이 차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남자 야구에서는 ‘박찬호 키즈’가 세계의 벽을 낮게 만들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김연아 키즈’가 세계 정상으로 등극할 날을 위해 피땀을 흘리고 있다. 이제 ‘박지성 키즈’들이 축구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반갑고 좋은 일이다.

‘*** 키즈’가 확산되면서 ‘C4J0K21O19의 비밀’이 가슴 아프게 떠오른다. ‘C4J0K21O19’는 무슨 암호일까. 바로 조선 4대 왕인 세종 재임기인 1418년부터 1450년까지 32년 동안 전 세계 과학적 성과 건수다. 그 기간 동안 중국이 4건, 일본은 0건, 유럽을 포함한 기타가 19건이었지만 한국은 무려 21건이었다. 당시 대표적 과학 성과로는 한글창제 측우기발명 금속활자 발명 등이다(이 통계는 일본인 학자가 1983년에 쓴 과학기술의 역사라는 책에 따른 것이다).


◇‘21 대 0’에서 ‘0 대 21’로, 왜 이런 수모를 겪을까?

하지만 지금은 참담하다. 일본이 올해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받아 과학 분야 노벨상을 21건이나 받았다. 하지만 한국은 0(평화상 제외)이다. 500여년 만에 ‘세계 최고의 과학국가’였던 한국은 ‘과학 낙제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1 대 0’의 ‘일방적 우세’에서 지금 ‘0 대 21’이라는 ‘참담한 열세’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종 때 과학발명 시스템을 연구하면 그 해답이 나올 것이다. 측우기 개발을 예로 들어보자. 측우기는 당시 세자였던 문종의 아이디어(기획)와 천재적 제조능력을 가진 장영실(실천)과 당시 가장 우수한 인재 집단이었던 집현전(씽크 탱크)의 ‘3위1체 팀워크’에 힘입어 발명됐다. 물론 세종대왕의 ‘지휘능력’은 보이지 않는 지혜, 즉 암묵지(暗黙智)였다.

훈민정음 창제도 마찬가지다.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원리 및 모음과 자음의 사용 예시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유네스코의 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한글은 과학적이다. △자기의 뜻을 자유롭게 표현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죄상을 읽지 못해 피해를 입는 백성들을 어여삐 여긴 세종대왕의 애민정신(동기)과 △문종과 안평대군을 비롯한 왕자와 공주들의 헌신적 연구 및 △동서양의 광범위한 문자 체계에 대한 자료와 지식을 갖춘 집현전 학자들의 협력이 뒷받침됐다. 집단창의(Group Genius)가 발휘되면서 당시는 물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 체계가 창제됐다.

‘*** 키즈’와 ‘세종시대에 꽃핀 과학’은 인재양성과 인재활용의 중요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글로벌 최고 수준에 대한 열등감(컴플렉스) 제거와 자신감 △왜(Why)와 무엇(What), 그리고 어떻게(How to)를 아우르는 스토리텔링(기획력) △임현사능(任賢使能; 기획력 있는 인재에게 총괄을, 실행 능력이 있는 인재에게 실무를 맡기는 것) △사필귀고(事必歸古;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할 때는 반드시 옛것을 참고하는 것) 등의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자의 교육 및 인재등용 원칙과 연결된다. 공자는 공부하려는 사람의 자발성을 강조했다. 스스로 깨치려 하지 않으면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則不復也),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학비(束修以上未嘗無誨, 『논어』 (술이편))와 출신(不保其往, 불보기왕; 『논어』 (술이편))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가르쳤다.

◇‘한국의 노벨상 수상’, 공자와 세종에게서 배워라

공자는 또 배우는 것 못지않게 스스로 생각하는 것도 중시했다.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고 지적했다. 송(宋)의 정이천(鄭伊川)은 (안자호학론(顔子好學論)이란 글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확인했다. 배우고도 깨치지 못하는 ‘학이불각(學而不覺)’을 경계한 것이다. 그는 “배움의 길은 반드시 마음을 밝혀 가고자 곳을 안 뒤에 힘써 그것을 얻으려 노력해야 한다(學之道 必先明諸心知所往 然後力行以求)”고 강조했다.

공자는 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자리가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不患人不知, 不患無位)”고 했다. 그것보다는 “내가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하고 자리가 주어졌을 때 제대로 설 수 있는지를 걱정하라(患不知人, 患所以立)”고 경계했다.

한국은 과학 문학 의학 등에서 아직도 노벨상 수상자를 한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무역규모가 6~7위권, 경제규모(GDP)가 13위권인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인구 5000만명 이상)의 ‘대국’으로서는 창피한 일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 키즈’와 ‘C4J0K21O19’에서처럼 우리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다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못할 뿐이다. ‘노벨상 제로’를 한탄하지만 말고 극복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 개혁에 하루빨리 나서야 할 때다. 그것이 경제도 살리는 길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세종처럼’하면 된다. 이미 성공한 시스템이 있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물론 500년 전의 시스템이어서 그대로 재사용은 안되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법고창신(法古創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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