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투자증권 사태…중소증권사의 딜레마

머니투데이 이병찬 이코노미스트 2015.10.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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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르기]금융 패러다임 변화에서 소외되는 중소증권사의 단면

편집자주 변동성이 점점 커지는 금융경제 격변기에 잠시 숨고르며 슬기로운 방향을 모색합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한화투자증권이 수수료제도변경(주식매매수수료를 정율제에서 상담·비상담 계좌의 선택제로 변경)을 두고 업계 초유의 항명사태가 벌어졌다. 지점장 전원이 지점장협의체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반기를 드는 가운데 지역본부장 2명이 대기발령을 받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다.

주진형 사장이 취임후 추진해 왔던 이례적 개혁조치들(매도 리포트 의무화, 주식 회전율 축소, 사내 편집국 설치 등)과 파격적 경영에 대한 임직원들의 누적된 피로감이 임기 5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폭발한 형국이다.



일견 ‘튀는’ CEO로부터 시작된 한화투자증권 만의 특수한 소동으로 볼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증권업 전체, 특히 중소형 증권사의 누적된 문제가 주진형 사장의 캐릭터를 계기로 노출된 성격이 강하다. 이번 소동은 금융 패러다임 변화에서 소외되고 있는 중소증권사가 맞이한 업계의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죽어가는 리테일



최근에는 거래수수료를 5년까지 면제해주는 증권사가 등장하는 등 이미 주식거래 중개업무는 주요 수익원으로서의 기능 보다는 고객을 묶어두고 충성도를 높여서 그들로부터 파생되는 부수 영업수익(신용대출, 금융상품판매 등)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바뀐 상태이다.

한화투자증권이 보이고 있는 소동은 이런 리테일영업의 구조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뒤늦게 생존을 모색하는 과정에 불거진 파열음이다. 중소형증권사들이 공히 겪고 있으나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수십 년간 되풀이 되는 시황 의존적 천수답 경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증권사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장이 호황일 땐 잊혀졌다가, 불황일 때는 구조조정으로 연명하기 일쑤다. 그나마 벌어 들이는 거래수수료의 상당부분은 HTS에 익숙하지 못한 돈 많고 오래된 고객들의 수수료 둔감증에 의존한다. 여기에 안주하기에는 금융환경의 변화속도가 너무 빠르다.


▷조직영업 vs 사람영업

여러 차례의 금융위기 속에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시장 포지셔닝이 양방향으로 정착되고 있다. 즉, 체계적 관리와 조직력을 앞세운 시스템 영업 중심의 대형사와 전문인력의 개인적 역량에 의존하는 네트워크 영업중심의 소형사로 양극화되고 있어 중간 포지셔닝으로는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런 과정에서 한화증권은 2012년 9월 푸르덴셜투자증권과의 합병을 통하여 대형사로의 변화를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 실패의 잔상이 지금의 소동인 것이다.

반면 비슷한 규모의 메리츠종금증권은 2015년 6월 IM투자증권을 인수합병하면서 대형사로의 변화와 동시에 기존의 전문인력 중심의 영업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시장 포지셔닝이 명확치 않은 중소형 증권사들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증권 자회사의 시너지 소멸

70~80년대 업종 다각화의 시너지를 위해 기업그룹이 증권회사를 자회사로 가지던 것이 필수였던 시대가 저물고 금융전문그룹 중심으로 금융업의 생태계가 바뀌었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강화, 동양종금증권 사태로 강화된 계열사 자금지원 차단 등으로 말미암아 증권 자회사가 가지던 그룹의 유동성 지원 창구로서의 기능은 이제 소멸됐다. 금융전문그룹에 비하여 경쟁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시장규모는 금융전문그룹들이 가져가기에도 부족한 지경이다.

구조조정 전문가로 알려진 주진형 사장의 의도대로 한화투자증권 사태가 정리된다 하더라도 한화그룹이 증권회사를 유지해 얻는 시너지는 크지 않을 것이다.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전문그룹으로 분리되기를 기다리기에는 증권업이 처한 환경이 녹록치 않아 보인다.

▷핀테크혁명에서 소외되는 증권회사

핀테크혁명이 전면적으로 확장되면서 증권업은 물론 금융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ICT혁신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전자상거래와 인터넷금융결합, 빅데이터기반 자산관리, 알고리즘 트레이딩, 크라우드펀딩, 인터넷전문은행 등 금융업의 업종 구분을 무색하게 만들며 기능중심의 금융산업 패러다임변화로 이어진다.

감독과 규제체계가 핀테크혁명을 따라가기 바쁜 가운데 기존의 전통적 라이센스비지니스로 땅집고 헤엄치던 금융생태계는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어졌다. 한화투자증권 사태는 재개발이 한창인 동네에서 집수리 문제로 부심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핀테크는 증권회사가 활용할 객체가 아니라 증권회사를 해체하고 잠식하는 위협의 주체가 되고 있다. 금융 패러다임 변화는 쓰나미처럼 덮쳐올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구조조정이나 대형화로 몇 년 연장할 수는 있을지언정 1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의 증권회사가 그대로 유지될 지는 의문이다. 이번 한화투자증권 사태가 증권회사 쇠락의 전주곡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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