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시는 꾸밈이 없다. 아래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 시의 연결과 매무새가 자연스럽다. “산길을 걷다가 나무가 패인 자리에서/ 등잔을 하나 주”운 시인은 무명옷을 꿰매던 어머니, 연필에 침을 묻혀 가며 한글을 깨우치던 까까머리 아이, 소작농 아비의 술에 전 코 고는 소리 등 “등잔 하나에 구구절절했을 이야기를 듣는”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 등잔을 켜고 살았던 시절의 가족사일 것이다. 나무는 고사했거나 물리적 힘에 의해 뿌리째 뽑혔고,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등잔에는 “불꽃에 데인 그을음이 남아 있다”. 살아 있어야 할 나무가 죽었다는 것은 어린 나를 지탱해주던 가족의 부재와 잔가지 같던 추억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여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지난날”과 함께 “흙을 파서 다시 제자리에 묻”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흙이 패인 것은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고, 흙을 다시 덮는 것은 덧난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다. 하지만 흙으로 덮는다 해서 상처가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물집1
맨손으로 바쁘게 삽질을 하는 동안
집게손가락에
허락도 없이 덩실한 집 한 채 지어졌다
툭툭 건드렸더니
발갛게 달아오르다
눈물주머니처럼 터져 주르르 흐른다
삽시간에 온몸으로 퍼진 쓰라림이
쉽게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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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참
아무리 불법건축물이어도
함부로 철거할 일이 아니었다
평생을 바쳐 손수 지은 집 한 칸이
농사 빚 부풀어
한겨울에 빨간딱지로 거리에 내쫓긴
한국이 아재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논 두둑을 쌓기 위해/ 맨손으로 바쁘게 삽질을 하”다보니 집게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시인은 물집에서 불법건축물을 연상한다. “평생을 바쳐 손수” 짓는 것이 집인데, “농사 빚” 때문에 “한겨울에 빨간딱지로 거리에 내쫓긴/ 한국이 아재”를 생각한다. 시인의 측은지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지만 ‘한국이 아재’를 통해 열악한 우리 농촌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논 두둑을 쌓는 행위 또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지만 이마저도 덧나고 만다. 어머니 같은 흙은 모든 것을 감싸 안지만 부패(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2008년 ‘작가’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 김황흠 시인의 시에는 흙의 마음을 닮은 순진무구한 세계와 호락호락하지 않은 농촌현안에 대한 깊은 고뇌가 존재한다. 그의 시에 유독 눈과 비 그리고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비닐하우스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오늘도 그는 “제 몸집의 몇 배의 집을/ 악착같이 지고” “길 생김새에 몸을 맞추어”(‘달팽이1’) “최초의/ 아니 최후의 유목민”처럼 묵묵히 농부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 숫눈=김황흠/문학들/112쪽/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