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스탑"과 "빅 이닝"

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2015.10.07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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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사진제공=뉴스1/사진제공=뉴스1


올해 프로야구 관중수가 700만을 훌쩍 넘기며 신기록을 세웠다. 야구 인기의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해외로 나간 선수들의 활약이 그 하나가 아닐까. 단지 그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팬들이 야구를 보는 시각이 넓어졌으니 말이다. 추신수의 활약을 짚어 보며 관심이 적었던 '출루율'을 보게 됐고, 류현진을 보면서 '삼진/볼넷 비율'에도 관심 갖게 됐다. 메이저리그 야구 자체도 즐기게 됐다.

그런데 이런 영향인지 몰라도 최근 야구계에는 낯선 영어 표현이 부쩍 늘었다. 물론 미국이 야구 종주국 위치에 있으니 기본적인 말들이 영어인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요즘 모습은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엔 방송과 신문기사의 영향이 크다.



근래 자주 쓰이는 말 중에 '빅 이닝'이 있다. 다득점 이닝을 말하는데 그 기준은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다르다. 조해연의 '우리말 야구용어 풀이'에는 3점 이상을 낸 이닝이라 돼 있고, 위키피디아에서는 4점을, 어떤 기사는 5점을 기준으로 삼는다. 마치 우등생 기준이 10등인지, 5등인지 사람마다 다른 것과 같다. 점수를 '많이' 낸 것을 굳이 영어를 붙여 따로 설명해야 할까.

3연전으로 진행되는 경기 결과를 놓고는 '스윕', '위닝시리즈'라는 말을 언제부터인가 많이 쓴다. 스윕(sweep)이란 청소하다, 쓸다라는 뜻이다. 세 판을 다 이겼다는 건데 말 그대로 '싹쓸이'다. 위닝시리즈(winning series)는 2승1패 이상의 좋은 결과를 올렸다는 말인데 꼭 이대로 표현해야 할까.



최근 한 프로야구 경기 요약 방송에서는 이런 말이 들렸다. "아… 오버 더 숄더 캐치(over the shoulder catch)에 실패합니다." 빗맞은 타구가 투수 머리 위로 튀었는데 투수가 돌며 잡으려다 놓친 상황이었다. 어깨 아닌 '숄더'를 써서 '이름'을 붙여야 하는 동작인지 잘 모르겠다.

선수가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을 '루틴(routine)'이라고 하거나, 어려운 타구를 잡아낸 것을 '슈퍼 세이브'나 '슈퍼 캐치'라고 하는 것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 한국야구위원회(KBO) 홈페이지에서는 야구규칙 정보는 얻을 수 있지만 야구용어는 찾을 수 없다. KBO는 "야구용어를 따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1980년대 야구중계에서는 수비수를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세컨드 베이스맨 ○○○, 숏스탑(shortstop 쇼트스톱) △△△." 요즘은 2루수, 유격수라고 하는데 이를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숏스탑"과 "빅 이닝"
앞에 선 사람들이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야구인, 야구기자들이 올겨울 머리를 맞대면 어떨까. 잘나가는 한국 야구의 내실을 다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야구 용어가 미래의 팬에게 벽이 되거나, 오랜 팬에게 불편함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역시 팬으로서 한글날을 앞두고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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