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 장그래의 미래는…'쪼개기 계약' 없앤다지만, 2년 더?

머니투데이 세종=이동우 기자 2015.09.17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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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노동개혁, 노동시장 이렇게 바뀐다-②]기간제·파견근로자 대책

/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중견기업 기간제 근로자 김진우씨(38, 가명)는 한 달 뒤면 계약 기간 2년을 채운다. 김씨는 계약 기간을 2년 더 연장할지 고민이다. 여전히 정규직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단 현직을 유지하며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높여볼까 하는 생각이다.

정부는 이번 노사정 대타협안에서 비정규직 퇴직금을 마련하고, '쪼개기 계약'(정규직 전환을 피하기위해 사측이 요구하는 초단기 계약)을 막는 등 처우개선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35세이상 비정규직 기간 연장을 놓고 노정간 견해차가 상당하다. 파견업종 확대 역시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동상이몽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노사정의 추가 협의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비정규직 기간 연장, 파견 업종 확대…여전한 견해차

정부의 생각대로 김씨는 4년간의 기간제 근무를 마친 뒤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노동계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정부가 기업들에게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정성을 연장·심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수 있다는거다. 노동개혁안 중 비정규직 대책이 미완으로 남은 가장 큰 원인이다.

정부는 35세 이상 근로자가 원하는 경우에만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젋은 근로자들은 최대한 정규직 채용을 유도하고, 정규직 전환률이 9%에 불과한 35세 이상 근로자들에게만 연장의 기회를 준다는거다. 정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10명 중 9명이 2년 내 회사를 떠나는데, 조금이라도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는게 합리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정부 계획은 비정규직 사용의 부담을 사용자에게 지워 확대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즉 고용기간이 만료되면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하고, 계약을 종료할 경우에는 2년간 임금의 10% 수준의 '이직수당'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를 받아들이는 노동계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장그래'만 확산한다는 입장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기간 연장을 원하는 비정규직이, 이를 원하지 않는 비정규직보다 많다는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비정규직을 양산해 노동시장의 질을 하향평준화 시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영계도 정부의 방침에 불만이 많다. 사용기간을 제한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직수당을 지급하는 것도 규모가 영세한 중소기업들에는 부담이라는 주장이다.


파견 업종 확대 문제도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는 현재 32개 업종으로 제한된 파견 허용 대상을 55세 이상의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파견 근로 대상이 확대되면 고령자 16만3000명과 고소득 전문직 2만 명이 은퇴 이후 취업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계는 이 역시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퇴직금 받고, 쪼개기 계약 막고…차별대우는 노조와 함께

합의에 이룬 부분도 적잖다. 노사정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에서 의견접근을 이뤘다. 두개 쟁점에 대해 노사정이 의견 일치를 이룬다면, 언제라도 바뀐 제도가 시행될 수 있다.

우선 그간 비정규직에는 지급되지 않던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노사정은 이번 합의를 통해 한 사업장에서 3개월 이상 일한 근로자에 퇴직금을 지급도록 했다. 중장기적으로 비정규직 규모가 감축되도록 한다는 합의에서다. 김씨가 4년을 일한 뒤 회사를 떠나게 되더라도 퇴직금과 이직수당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규직 전환을 빌미로 한 쪼개기 계약도 차단된다. 지난해 7차례 쪼개기 계약을 요구받은 여성근로자가 극심한 심적 고통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벌어졌다. 일부 대기업 비정규직의 경우 13일짜리 초단기 계약을 비롯해 23개월간 18번의 쪼개기 계약을 맺기도 했다. 노사정은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 갱신을 2년간 3회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비정규직 차별 대우에 대한 노동조합 차원의 구제신청도 가능해진다. 그간에는 김씨 같은 개인이 차별을 받을 경우, 당사자에 한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 구제신청을 할 수 있었다. 차별을 받아도 회사 차원의 보복과 불이익이 두려워 제대로 된 구제신청이 이뤄지지 않던 현실적인 문제를 노조 차원에서 대리신청이 가능케 해 보완했다.

정부는 이같은 규정들을 모든 사업장에 적용할 방침이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추가 논의해야 할 사항이다.

생명·안전 분야의 핵심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사용제한도 이뤄질 전망이다. 선박·철도·항공기 등 여객운송업종 근로자와 안전·보건관리자 등이 대상이다. 고용이 불안정한 인력이 안전진단 업무를 수행할 경우 전문성과 책임감 저하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적으로 높아진 안전 요구에 맞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 확대에 대한 의견접근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파견법, 기간제법의 입법을 추진하는 가운데 노사와의 추가적인 협의를 해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해당 쟁점에 대한 야당의 반발이 거세 입법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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