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전쟁터, 밖은 지옥"…스스로 지옥 택한 삼성맨들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 2015.09.0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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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사내벤처 프로그램 C-Lab 출신 9명, 사표쓰고 창업한지 한달…"성공 못하면 안 돌아간다" 각오

"커피믹스 하나도 아쉽습니다"

스타트업(Start-up) 기업 솔티드 벤처(Salted Venture)의 직원들은 대기업을 다닐 때와 달리 작은 것 하나도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잘 갖춰진 조직을 나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그만큼 하루하루가 어렵다.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지옥을 제 발로 걸어 들어가 사업을 시작한 이들은 모두 삼성전자 출신들이다.



삼성전자는 8월 사내 벤처 육성프로그램인 C-Lab에서 진행하던 과제 중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3개를 뽑아 직접 기업을 세우도록 지원했다. 사내에서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창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9명의 직원이 퇴사해 3개의 스타트업 법인을 설립한지 한 달이 지났다.

삼성은 4일 미디어삼성과 그룹 공식 블로그 등에 이들의 근황을 자세히 소개하며 임직원들의 창의적 문화를 독려했다.



솔티드 벤처(조형진 대표, 김태현 이사, 이세희 이사, 김성국 이사)는 사용자의 보행 자세를 모니터링해 교정을 돕는 스마트 슈즈 솔루션을 준비 중이다. 스왈라비(sWallaby, 정해권 대표, 이상재 이사)는 '걷기' 목표를 달성하면 쿠폰을 제공하는 모바일 앱 '워크온'(WalkON)을 내놓는다.

이노베이션 메들리 랩(Innovation Medley Lab, 최현철 대표, 전병용 이사, 윤태현 이사)은 인체를 통해 소리를 전송하는 새로운 통화 'UX(사용자경험) 팁톡(TipTalk)'을 개발했다.

회사를 떠난 지 이제 한 달, 사무실을 정돈하고 막 첫걸음을 떼고 있다. 창업은 처음이지만 창조의 꿈을 키운 지는 꽤 됐다. 스왈라비의 정해권, 이상재 창업자는 2011년부터 정 대표의 옥탑 방에서 만나 아이디어를 나눴다. 당시 각자 다른 부서의 개발자로 있었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한 도전은 놓지 않았다.


정 대표는 "화이트보드 하나를 놓고 아이디어를 펼치다가 마침내 회사까지 차리게 됐다"고 밝혔다. 다른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2014년11월 열린 삼성전자 C-Lab 박람회 행사에서 과제를 설명하는 창업자들(당시 삼성전자 연구원).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노베이션 메들리 랩, 솔티드 벤처, 스왈라비/사진=삼성그룹 공식블로그 캡쳐2014년11월 열린 삼성전자 C-Lab 박람회 행사에서 과제를 설명하는 창업자들(당시 삼성전자 연구원).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노베이션 메들리 랩, 솔티드 벤처, 스왈라비/사진=삼성그룹 공식블로그 캡쳐


삼성전자 C-Lab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훈련소였다. 삼성전자는 임직원의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C-Lab을 2012년 도입했다. 이후 3년간 100여 개의 과제가 C-Lab에서 진행됐고, 40여 개는 개발이 완료됐다.

이중 27개는 관련 사업부로 이관돼 상품화가 진행 중이다. 퇴직을 결정한 이들도 C-Lab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스타트업 100개 중 1~2개도 살아남기 어려울 만큼 현실은 냉혹하다. 삼성전자가 재입사 기회도 보장한터라 일부에서는 "실패하면 다시 돌아오라는 조건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언론의 조명과 달리 정작 삼성전자에서 보낸 마지막 날, 축하해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얼마나 성공하기 어려운지 모두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9명의 각오는 남다르다. 이상재 스왈라비 이사는 "성공하지 않는다면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밝혔다.

하나같이 꼽는 '믿는 구석'은 밤새 토론하며 함께 꿈을 준비해온 동료다. 최현철 이노베이션 메들리 랩 대표는 "창업 멤버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도전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과 서비스 출시 시점은 늦어도 내년 상반기가 목표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창업자와 삼성전자는 또 다른 자산을 얻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과 영국 등 창업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실패 자체가 문제되지 않는다"며 "실패의 경험이 쌓여 또 다른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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