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 자본유출 비상…글로벌 총수요 위협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5.08.20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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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머징 리스크]13개월간 1조달러 순유출…신흥시장 통화 급락세에 구매력 약화 우려

글로벌 자본의 엑소더스(대탈출)가 급물살을 타면서 신흥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 경제의 성장둔화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이 맞물려 자본 이탈 속도가 빨라졌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른 통화 약세는 신흥시장의 구매력을 떨어뜨려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현지시간) 최근 13개월 동안 신흥시장에서 빠져나간 자본이 1조달러(약 1182조원)에 달한다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2배나 된다고 보도했다.



네덜란드 투자은행 NN인베스트먼트파트너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13개월간 19개 주요 신흥국에서 순유출된 자본은 9402억달러에 이른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2009년에는 4800억달러가 순유출됐다.

신흥시장 자본유출 비상…글로벌 총수요 위협


이는 금융위기가 진정된 이후 자본 유입이 두드러졌던 것과 대비된다. 2009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신흥시장에 순유입된 자본은 2조달러에 이른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저금리 기조 아래 쏟아낸 막대한 경기부양 자금이 고수익 매력이 큰 신흥시장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회복세를 주도한 신흥시장은 최근 성장세가 부쩍 약해졌다. 주요 신흥국 증시를 반영하는 MSCI신흥시장지수 편입 기업들은 역사상 가장 긴 침체기를 겪고 있다. 모간스탠리에 따르면 2011년 시작된 실적 침체는 이달까지 꼬박 4년간 이어졌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도 실적 침체기는 2년에 불과했다. 신흥시장 주요 기업들의 EPS(주당순이익)는 2011년 8월 고점에 비해 25% 추락했다. MSCI신흥시장지수는 지난주에 2012년부터 이어진 강세장을 마감하고 약세장에 돌입했다.

그 사이 신흥국 증시에선 글로벌 자본이 계속 빠져나갔다. 펀드정보업체 EPFR과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BofAML)에 따르면 신흥시장 주식펀드에선 올 들어 319억달러가 순유출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도 신흥시장에 악재가 됐다. 시장에선 FRB가 빠르면 다음달에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본다. 이는 달러 강세 요인으로 신흥시장의 성장세를 의심하는 글로벌 자본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FRB의 금리인상이 맞물리면 신흥시장에서 자본이탈 속도가 빨라져 현지 통화 가치가 급격히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주요 신흥국 통화 가치를 반영하는 JP모간의 신흥시장 통화지수는 2000년에 지수가 만들어진 이후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올 들어 이날까지 6.8% 떨어졌다. 아시아 주요 신흥국 통화 가운데 말레이시아 링깃화(-14.3%), 인도네시아 루피아화(-9.3%), 태국 바트화(-7.4%) 다음으로 낙폭이 컸다. 다른 지역의 신흥국 중에선 브라질 헤알화(-22.3%), 콜롬비아 페소화(-21.0%), 터키 리라화(-19.1%)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전문가들은 신흥시장 통화 약세가 총수요를 떨어뜨려 안 그래도 미약한 세계 경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출품 가격이 떨어져 수출을 늘릴 수 있지만 반대로 수입품 가격이 올라 수요가 줄기 때문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 6월 신흥시장의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13.2% 급감했다.

닐 시어링 캐피털이코노믹스 신흥시장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신흥시장의 수입 붕괴는 수요가 근본적으로 줄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자본유출은 내수를 위축시키고 상품가격 하락은 원자재 생산국의 소득을 줄게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통화 가치 하락은 신흥시장 기업들의 외채 상환 부담을 가중시킨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신흥국 기업들이 발행한 달러 표시 회사채 규모는 1조3000억달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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