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세당당 러시아 할머니·할아버지, 그 이유는?

머니투데이 공영희 소설가 2015.08.1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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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희의 러시아 이야기]<67> 박물관 손자손녀 안내는 기본…이웃집 아이에 "연습 게을리 하지 마라"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은 인간과 인간들이 모여 살며 테두리를 만드는 국가일 것이다. 그리고 자연이 가지고 있는 불가분의 강력하고 신비한 힘은 또 다른 존재로 지구인과 공생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도 인간들이 구축한 국가의 힘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지구나 인간에게 이들은 공통적으로 위안과 힘과 평안함을 주지만 다른 면으로는 언제나 또 다른 위협을 언제든지 가할 수 있는 공격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주지할 사실일 것이다.

인간들이 구축한 국가들의 형태가 발전되어 가면서 행정과 사법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몫이 문화이지 않나 싶다. 문화의 힘은 고대 국가들이 탄생했을 때부터 국가의 운명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니 강대국으로 세계를 재패했던 나라들을 보면 건축으로부터 문화 예술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는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현재도 문화유산으로 연명하는 나라가 있으니 그 위력을 알 만 하다.



러시아의 문화유산은 말할 것이 없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통의 러시아 사람들이 사는 동네의 아주 소소한 이야기다. 러시아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위세가 당당하다. 이유는 독소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어 아직도 그 시절을 이야기 하고 훈장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유로 버스나 전철 안에서 노인들이 보이면 젊은이들은 즉시 자리를 양보해야 되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혼이 난다. 그만큼 당당하게 늙음을, 그리고 나이 먹음을 표현한다.

필자가 모스크바에 살 때 두 딸이 음악을 하는 관계로 연주회장을 찾는 일이 많았다. 각종 콩클에 참가를 할 때도 필자는 늘 러시아 사람들과 같이 청중석에 앉아 그들의 호흡을 민감하게 살피곤 했다.



음에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갈수록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었다. 젊은이들도 연주회장을 오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의외로 많았다. 할머니들은 대개 겨울이면 두꺼운 외투와 부츠를 신고 와서 옷과 부츠를 맡기고 머리를 빗은 다음 근사한 외출복 차림으로 연주회장에 입장을 한다. 할머니들은 연주회 프로그램이나 콩클의 프로그램을 미리 알고 집에서 미리 공부를 하고 오는 것 같이 리플렛에 손으로 직접 해설들을 써오는 것을 보았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그 날 연주할 곡을 알고 있었으며 연주자의 연주를 듣고 바로 바로 반응했다.

나이 드신 노인들의 클래식 사랑은 유럽의 어느 나라 못지않았다. 콩클에서는 참가자들의 연주를 듣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에 돋보기를 끼고 진중한 자세로 자기 나름의 성적을 매기고 있었으며 등수까지 점쳐 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비록 유럽처럼 아주 잘 차려 입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할머니들은 어디서나 당당하고 자신있게 행동했다. 그런 그들의 자긍심은 알아주어야 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도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많이 찾아온다. 그리고 어린 나이의 손자 손녀들에게 지켜야 할 행동과 예의 범절을 깐깐히 가르치는 것을 보고 상당히 인상 깊었다. 러시아에서도 부모들이 맞벌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도와주고 있는데 진심과 진정어린 사랑의 훈육을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있었다. 필자의 딸이 피아노를 전공하기 때문에 집에서 연습을 많이 했다. 어느 곳이나 이사를 하면 제일 먼저 윗집, 아랫집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 하고 이해를 구하는데 그럴 때마다 시간 약속을 하고 선선히 동의해 주었다. 그렇게 모스크바에 17년을 살면서 한 번도 얼굴 붉힌 적이 없이 충분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집에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주변의 모든 이들이 너그럽게 음악을 듣기로 작정을 한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하루 오후에 장을 보러 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마침 아랫집 할머니가 동승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단번에 딸을 보더니 “요즈음 왜 연습을 많이 안하는 것이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 같이 멍하니 서 있는데 할머니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나는 밤 10시 까지 연습해도 괜찮다. 네가 연습하지 않으면 게으른 거 같아서 오히려 화가 난단다. 열심히 연습하거라” 우리는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여 배꼽 인사를 하고 기쁨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야-후!”

음악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집에서 연습하는 문제다. 그런데 이런 할머니를 이웃으로 두다니 가히 축복 받은 인생이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한 번도 연습 때문에 다툼을 벌인 일이 없었으니 모스크바 할머니의 축복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아 가끔은 생각이 난다. 러시아 할머니들의 문화수준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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