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의 시대, 경영세습을 위한 걱정어린 변명

머니투데이 이병찬 이코노미스트 2015.07.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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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르기]고용세습에서 정치세습까지… 세습 경영자들의 책임

편집자주 변동성이 점점 커지는 금융경제 격변기에 잠시 숨고르며 슬기로운 방향을 모색합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최근 벌어지고 있는 신동주·신동빈 롯데그룹 형제간 분쟁으로 재벌들의 경영권 세습이 또한번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경영권 세습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눈길은 결코 곱지 않다. 그 이유는 경영 능력 여부에 있다기 보다는 그들이 투입한 자본의 규모에 비하여 너무 큰 부와 권력을 가지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시기심 및 의심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롯데그룹 형제간 경영권 분쟁의 키를 쥐고 있는 광윤사의 지배구조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부분은 재벌 세습경영의 의심스럽고 불공평한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많은 재벌들에게 이런 식의 경영권 세습이 가능하게 된 근저에는 현대 회사법의 구조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주의에 입각하여 주주총회 보다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경영권을 강화시킨 데 기인한 바가 크다. 지배구조를 좌우함에 있어 지분율 보다는 이사구성이 더 우선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즉, 창업으로부터 재벌로 확장과 분화를 거듭하면서 소유 지분은 희석되어 왔지만 창업세력의 지속적 성공에 힘입어 이사회는 계속 장악할 수 있었기에 일어나는 구조적 현상이다.

결과적으로 얼마 안되는 지분으로 거대한 그룹을 지배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됐다. 이는 자본주의 주식회사 체제의 효율적 측면이자 동시에 불합리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영권 세습이 불편하고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다른 세습 행태와 비교한다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고용세습을 보자. 고용노동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하여 지난 2월11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3년말 기준 100인이상 사업장 727개의 단체협약규정에서 221곳이 퇴직자나 장기근속자의 가족 우선특별채용 조항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고용세습'의 특권을 인정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10.2%(6월 기준)에 달하고 입사경쟁율이 수백대 1을 다반사로 넘기는 상황에서 너무나 불공정하고 불공평해 보인다. 심지어 헌법상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불법적인 성격마저 가지고 있다. 고용주가 세습이라 세습 고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둘째로 교회세습이다. 신성하고 정의로워야 할 교회에서 변칙적인 세습이 횡행하고 있는 것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주요 교단에서 2003년부터 세습방지법을 제정하여 세습을 방지하고 있지만 교묘한 '변칙세습'이 난무하고 있다.


개신교 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에서 지난 5월27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3년 6월29일부터 지난 1월19일까지 제보를 통해 확인한 교회세습은 122개에 달하고 이중 85개는 직계세습, 37개는 법망을 피한 변칙세습이라고 한다. 세반연에서 소개한 변칙세습방법에는 지교회세습, 교차세습, 다자간세습, 징검다리세습, 분리세습, 통합세습, 동서간세습, 쿠션세습 등 사기업의 세습기법을 뺨치고 있다. 어쩌면 기업의 다양한 세습 노하우가 교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음으로 사학세습도 문제다. 정진후 의원의 2013년도 국정감사 보도자료 ‘사립대학 부정·비리 근절방안’에 따르면, 2013년 7월 말 현재 4년제 사립대학법인 141개중 91개(64.5%), 전문대학법인 99개중 87개(87.9%) 법인에서 설립자의 친·인척이 대학 총장 및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직계 가족이 이사장·총장·이사로 세습하는 경우는 사립대학이 48.4%, 전문대학이 64.9%로 각각 나타나고 있다. 합법성 여부를 떠나서 도덕과 진리를 책임지는 최전선인 상아탑이 세습으로 얼룩지고 있으니 누구를 탓하랴?

연예세습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에는 부모나 친척이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자신의 타고난 유전적 끼가 부끄러웠던 시절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자랑거리가 되고 남다른 재능이 되기 시작했다. 요즘은 연예인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고 선망이 되는 최고의 직업이 됐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구름처럼 몰려드는 지원자와 경쟁률을 보면 얼마나 어렵고 치열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너무나 쉽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단지 연예인의 아들과 딸·형제자매라는 이유로 전파매체에 무임승차하는 일이 다반사가 돼 버렸다. '붕어빵', '아빠 어디가', '아빠를 부탁해',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프로그램들은 수많은 예능 지망생들의 땀과 아픔을 한번이라도 고려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정치세습이다. 다른 세습에 비하면 세습 정치인들이 억울해할 가능성이 큰 부분이다. 선거제도를 통해 엄격하고 공정하게 검증받아 당선될 뿐 아니라 4년마다 재신임을 받기 때문에 세습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어렵다는 이유다.

그러나 유력한 정치가문을 가진 사람이 당선 확률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전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유력가문에서 대를 이어 정치인이 배출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19대는 18명, 18대는 27명이 지역구를 세습했다. 정치권력이 권력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다보니 후광효과나 기득권효과가 다른 분야 보다 크다. 과연 이들은 자신들이 세습 정치인이라고 인정하고 있을까?

전세계 기업의 90%가 가족 경영이라는 얘기가 있다.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부모가 일군 사업을 자식에게 맡기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기에 비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세습 경영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나서 배가 아프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벌이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검증 안된 세습 경영의 실패가 초래할 사회적 파장을 걱정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세습 경영자들은 이점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책임의식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적법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 수 없다. 요즘과 같은 ICT와 SNS 혁명기에 감정적 배타와 질시를 받으면서 지속적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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