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주식시장의 마력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2015.07.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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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85>

[박정태 칼럼]주식시장의 마력


#태풍과 허리케인에 여성 이름만 붙이는 건 잘못이라며 1979년부터 남성 이름도 쓰게 됐지만 투자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시장의 마력을 여성에 비유하고 있다. 가령 요즘도 선물옵션 만기일이면 어김없이 ‘세 마녀의 날’이니 “네 마녀가 심술을 부렸다”는 말이 들려오곤 하는데, 사실 ‘시장의 마녀’가 많은 투자자들을 홀린다는 표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쓰여왔다.

19세기 중반 월가에서 활동했던 윌리엄 파울러는 투기를 향한 열정은 모든 이들의 흥분을 삼켜버리고 분노와 질투보다도 더 강렬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주식시장은 노회한 마녀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최신 유행의 화려한 장식으로 눈부신 광채를 내뿜고 투기꾼들에게 탐욕의 미소를 흘리며 황금상을 가리키면서 이들을 유혹해낸다. 그리고는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모든 사람들을 파멸의 늪에 빠뜨린다.”



#주식시장은 이처럼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세계 최대의 뮤추얼펀드 회사 피델리티를 일궈낸 에드워드 존슨 2세의 말은 음미해볼 만하다. “시장이란 아름다운 여성과 같아 끝없이 매혹적이고 끝없이 복잡하며 항상 마음을 어지럽힌다네. 이것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야.” 시장은 늘 똑같은 모습인 것 같지만 아무리 봐도 그 속내를 이해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아예 외면하거나 잊어버릴 수도 없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주식시장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고 푹 빠져버리는 것인데, 개별 종목으로 들어가면 그 수수께끼 같은 매력은 한층 오묘해진다. 에드 존슨의 말을 더 들어보자. “가령 어떤 여성을 만났는데, 이 여성이 당신과 곧바로 잠자리에 들겠다고 한다면 거리의 여자밖에 안 되는 거야. 하지만 저녁을 함께 하며 얘기도 나누고 때로는 조금 튕기기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면 좋은 연인이 될 수 있지.” 주식도 이렇듯 처음부터 곧바로 올라가면 재미없고 오히려 등락을 거듭하며 속을 좀 태우다가 상승해야 투자하는 맛도 있고 보유할 마음도 생긴다는 얘기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투자할 주식을 선정하는 게 아내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신붓감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이것저것 까다롭게 나열할 수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 모든 조건을 무시해버리고 그녀를 선택하게 된다.”버핏다운 직설적인 비유지만 다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주식이 아내나 연인과 다른 점은 아무리 사랑해주어도 그 마음을 열지 않고, 심지어 내가 자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꿈속에서도 나타날 정도지만 주식은 여기에 아무런 보답도 해주지 않는다. 주식을 향한 애정은 그저 나 혼자만의 짝사랑일 뿐이다.

#경제학자로는 드물게 투자자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젊은 시절 선물매매와 환투기를 즐겨 했는데, 1920년대 초에는 한해 1만 파운드(요즘 화폐가치로 50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가 때로는 엄청난 손실을 입고 친구들에게 빚을 지기도 했다. 이처럼 단타 매매를 좋아했던 케인스는 알다시피 동성애자로 20대와 30대 때는 해마다 파트너를 바꿀 정도로 대단한 바람둥이였다. 그러다 마흔두 살 되던 해인 1925년 러시아 태생의 매력적인 발레리나 리디아와 결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투자 방식도 극적으로 바뀌었다. 케인스는 1930년대 이후 우량주를 장기 보유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는데 “오늘 주식을 사서 내일 팔아 치우는 주주들”을 비난하며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장기 투자를 하라고 강조했다.“결혼과 마찬가지로 주식을 매수하는 것도 죽음 혹은 그 밖의 중대한 사유가 발생할 때를 제외하고는 영구 불변한 것으로 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병폐를 치유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그러면 투자자들은 눈을 오로지 장기적인 전망 쪽으로만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마력을 여성에 비유하는 것은 이렇게 사람을 변하게 하는 힘 때문이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도 여성이고,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처럼 우리를 구원하는 것도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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