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NO"…메르켈의 선택은?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5.07.0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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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 조건 완화냐, 강경론 고수냐…WSJ "재정위기 5년 가장 큰 도전"

그리스가 국민투표에서 국제 채권단에 반기를 들면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위기가 불거진 지 5년 만에 가장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메르켈 총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유로존의 미래를 결정짓겠지만 그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메르켈 총리의 선택지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에게 굴복해 구제금융 지원 조건을 완화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강경론을 고수하는 것이다.

문제는 둘 다 위험천만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그리스에 대한 양보는 반(反)그리스 정서가 만연한 독일에서 정치적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신이 주도해 유로존이 지난 5년간 다음 위기를 막기 위해 애써 마련한 엄격한 규율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강경론을 고수하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를 촉발할 수 있다. 그리스는 대혼란에 빠져들게 뻔하지만 그렉시트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욱이 메르켈 총리는 그동안 "유로존이 실패하면 유럽이 실패한다"며 공개적으로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지지해왔다.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 지원을 위한 새 협상에서 그리스와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대로 채무탕감을 용인하는 등 일부 조건을 완화하면 그리스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독일 의회, 특히 메르켈 총리가 속한 보수 진영의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안 그래도 최근 독일 정치권의 반그리스 정서는 절정에 달했다. WSJ는 독일 의회 보수진영 분위기는 협상안의 강도가 더 세져도 반대할 기세라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에 채무탕감 얘기까지 나오면 반란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스에 대한 새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마련하려면 독일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경우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메르켈 총리의 기독교민주당(CDU) 소속으로 독일 의회의 유럽연합(EU)문제위원회 위원장이자 그렉시트 지지자인 귄터 크리히바움 의원은 "성공적인 구제책은 구제를 원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구제하는 것"이라며 "그리스가 구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를 구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없다"고 말했다.

지그마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도 6일 독일 매체 타겔슈피겔과 회견에서 "치프라스 총리가 유럽과 그리스가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마지막 다리를 파괴했다"고 거들었다.

그리스 정부가 국민투표 승리로 우쭐해져 일부 조건을 양보하더라도 꽤 높은 수준의 경제개혁 요구가 포함될 수밖에 없는 채권단의 협상안을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WSJ는 또 그리스에 대한 지원 조건을 완화하는 것은 독일의 위기대처 방식의 이론적 근거 자체를 무효로 하는 것으로 이 역시 메르켈 총리에게 타격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신문은 메르켈 총리가 자기방어 본능에서 강경론을 고집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독일 유권자들 사이에서 그렉시트가 실현되면 그 책임이 치프라스 총리에게 있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도 메르켈 총리의 강경 대응 가능성을 부추긴다.

도이체방크도 이날 낸 보고서에서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오면 그렉시트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 다음엔 경제난 심화로 치프라스 총리의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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