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고운 음색에 성악 창법으로 돈 맥클린의 ‘빈센트’(Vincent)의 첫 소절 ‘스타리 스타리 나잇~’이 흘러나오자, 시끌벅적하던 장내가 순간 조용해졌다. 딱딱하고 보수적인 ‘공무원’에 대한 편견도 실크같은 영어 발음에 모조리 사라졌다.
이 광경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는지, 갑자기 맞은 편에 조용히 앉아있던 송성각 콘진원 원장이 기자가 가져온 기타를 빌려달라며 “한곡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는 기타를 잡자마자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포즈를 짓고는 사이먼&가펑클의 ‘더 박서’(The Boxer)를 연주하며 노래했다.
콘진원 직원들은 “아니, 우리 원장님한테 저런 매력이 있었어?”하며 수군거렸고, 참석자 모두 “오늘의 스타”라며 치켜세웠다. 송 원장도 팝송 1곡과 트로트 1곡을 앙코르로 부른 뒤 한마디 했다. “40년 만에 기타를 잡았더니 좀 힘드네요.” 의기양양한 그의 멘트에 관객들의 야유(?)와 질투가 쏟아졌다.
서먹했던 분위기는 두 고위공무원의 적극적 참여로 확 바뀌었다. 그 이후 다른 문체부 직원이 자발적으로 나서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을 불렀고, 이 분위기는 고기 냄새를 타고 방안 가득 번졌다. 가끔 음식을 나르던 주방 직원이 “어디, 노래 동아리에서 나오셨어요?”라고 웃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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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문이 닫힐 때까지 참석자들은 ‘세시봉 분위기’를 타고 추억의 노래를 연달아 소화했다. 식당 밖에선 기자단과 공무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게 진짜 ‘문화가 있는 날’”이라고 했다. 다른 부처에 오랫동안 출입한 한 기자는 “다른 부처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라며 웃었다.
고위공무원들이 노래를 부를 때 보이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열정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내비치려는 그 순간의 행복감이 얼굴 곳곳에 묻어있었다고 할까. 마치 “왜 나의 이 숨은 끼와 열정을 꺼낼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까”하고 묻는 듯했다.
문체부가 진행하는 ‘문화가 있는 날’, 콘진원이 애써 추진하는 ‘콘텐츠 혁신’ 같은 프로그램이 이제 막 본궤도에 진입하려고 한다. 아직까진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런저런 변화와 수정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날 이들의 ‘떼창’을 보면서 그리고 막혔던 가슴 속 울화를 터뜨리는 현장을 보면서 일말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문화, 또는 문화 프로그램의 성공은 자기 감동에서 나온다는 사실 말이다. 스스로 감동하지 못하면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없는 가수처럼, 행정을 집행하는 공무원 역시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느끼고 싶은지 알고 싶다면 스스로 깨달아야한다는 것이다.
자기체험을 통해 감동을 얻는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면 과욕일까. 문체부 송 실장은 결국 밤차를 포기하고 2차 노래방에서 못다 한 ‘문화가 있는 날’을 즐겼다. 이곳에서 그는 박자도 놓치고 음정도 놓쳤다. 하지만 웃음만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