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에서 벌어진 고위공무원들의 '떼창'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5.04.01 05:34
글자크기

[현장클릭] '변방'의 문화가 있는 날… 감동을 주기위해 감동 받아야, 그게 '문화'

고깃집에서 벌어진 고위공무원들의 '떼창'


지난 27일 전남 나주의 한 고깃집.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기자단 초청 워크숍이 끝난 뒤 가진 회식 자리였다. 술이 서너 잔 돌고 나서 문화체육관광부 한 공무원이 “우리 실장님이 한 소절 뽑겠습니다”라고 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문체부 기획조정실 송수근 실장이었다.

맑고 고운 음색에 성악 창법으로 돈 맥클린의 ‘빈센트’(Vincent)의 첫 소절 ‘스타리 스타리 나잇~’이 흘러나오자, 시끌벅적하던 장내가 순간 조용해졌다. 딱딱하고 보수적인 ‘공무원’에 대한 편견도 실크같은 영어 발음에 모조리 사라졌다.



앙코르가 쏟아지자, 송 실장은 내친김에 성악 1곡과 팝송 1곡을 잇따라 추가했다. 알고보니, 송 실장은 지난해 ‘매력을 부르는 피아노’라는 반주법을 소개하는 책도 낸 ‘프로급’ 예술인이었다.

이 광경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는지, 갑자기 맞은 편에 조용히 앉아있던 송성각 콘진원 원장이 기자가 가져온 기타를 빌려달라며 “한곡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는 기타를 잡자마자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포즈를 짓고는 사이먼&가펑클의 ‘더 박서’(The Boxer)를 연주하며 노래했다.



문체부와 콘진원 직원, 기자단 등 ‘관객’ 30여 명은 “대박”이라며 놀라워했다. 평소 무게 있는 표정으로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송 원장의 의외의 변신도 그렇거니와, 이 노래의 가사가 4절이나 돼 워낙 소화하기 쉽지 않은 노래를 능숙한 솜씨로 해치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튕기는 기타 실력, 중저음의 매력적인 음색 등 튀는 매력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콘진원 직원들은 “아니, 우리 원장님한테 저런 매력이 있었어?”하며 수군거렸고, 참석자 모두 “오늘의 스타”라며 치켜세웠다. 송 원장도 팝송 1곡과 트로트 1곡을 앙코르로 부른 뒤 한마디 했다. “40년 만에 기타를 잡았더니 좀 힘드네요.” 의기양양한 그의 멘트에 관객들의 야유(?)와 질투가 쏟아졌다.

서먹했던 분위기는 두 고위공무원의 적극적 참여로 확 바뀌었다. 그 이후 다른 문체부 직원이 자발적으로 나서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을 불렀고, 이 분위기는 고기 냄새를 타고 방안 가득 번졌다. 가끔 음식을 나르던 주방 직원이 “어디, 노래 동아리에서 나오셨어요?”라고 웃으며 물었다.


식당 문이 닫힐 때까지 참석자들은 ‘세시봉 분위기’를 타고 추억의 노래를 연달아 소화했다. 식당 밖에선 기자단과 공무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게 진짜 ‘문화가 있는 날’”이라고 했다. 다른 부처에 오랫동안 출입한 한 기자는 “다른 부처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라며 웃었다.

고위공무원들이 노래를 부를 때 보이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열정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내비치려는 그 순간의 행복감이 얼굴 곳곳에 묻어있었다고 할까. 마치 “왜 나의 이 숨은 끼와 열정을 꺼낼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까”하고 묻는 듯했다.

문체부가 진행하는 ‘문화가 있는 날’, 콘진원이 애써 추진하는 ‘콘텐츠 혁신’ 같은 프로그램이 이제 막 본궤도에 진입하려고 한다. 아직까진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런저런 변화와 수정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날 이들의 ‘떼창’을 보면서 그리고 막혔던 가슴 속 울화를 터뜨리는 현장을 보면서 일말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문화, 또는 문화 프로그램의 성공은 자기 감동에서 나온다는 사실 말이다. 스스로 감동하지 못하면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없는 가수처럼, 행정을 집행하는 공무원 역시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느끼고 싶은지 알고 싶다면 스스로 깨달아야한다는 것이다.

자기체험을 통해 감동을 얻는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면 과욕일까. 문체부 송 실장은 결국 밤차를 포기하고 2차 노래방에서 못다 한 ‘문화가 있는 날’을 즐겼다. 이곳에서 그는 박자도 놓치고 음정도 놓쳤다. 하지만 웃음만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