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블룩’이 지고 ‘팟북’이 뜬다

머니투데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2015.03.28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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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책통]‘블룩’이 지고 ‘팟북’이 뜬다


“50년 동안 썩은 정치판을 이제 바꿔야 합니다. 50년 동안 삼겹살을 같은 불판 위에서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까맣게 타버립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이처럼 풍자와 해학이 넘쳤던 노회찬 어법이 등장했다. 다소 어눌한 듯 했지만 핵심을 찌르는 노회찬 어법의 힘은 대단했다. 유시민은 칼럼니스트였다. 정곡을 찌르는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그를 정치계로 이끌었다. 설전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진중권은 이 시대 최고의 트위터리안 중의 한 사람이다.

세 사람의 성을 딴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 카페’에서 세 사람은 각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 사안에 대한 해법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팟캐스트 내용을 다듬어 출간된 책이 ‘생각해봤어?’(웅진지식하우스)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이 보인다고 할 정도로 핵심이 쏙쏙 들어온다. 다루고 있는 주제도 교황, 국가안보, 불평등, 유전자 조작, 극우와 일베, 핵, 북한 인권, 기초연금과 의료민영화, 진화심리학 등 전방위적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블룩’(blook, 책+블로그)의 시대는 지고 ‘팟북’(팟캐스트를 책으로 옮겨놓은 것을 이렇게 부르면 어떨까)의 시대가 뜨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글’의 시대에서 ‘말’의 시대로 완전히 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소설가 김영하가 자신의 말을 모아 펴낸 ‘말하다’(문학동네)까지 읽으니 그런 느낌은 확신으로 연결되었다.

나는 얼마 전 강의에서 ‘팟북’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 한빛비즈)의 10가지 장점으로, 제목을 제외하고는 검색할 것이 별로 없다, 친구가 소곤소곤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 암기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식의 개인차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 보고 듣고 읽는 사람 모두가 좋아할 만한 책이다, 인간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방대한 지식이 마치 나를 위해 압축해놓은 것 같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들이 있을 것 같다, 절망적으로 좌절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진취적인 생각을 불어 넣는다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생각해봤어?’도 이러한 장점들이 대체로 적용된다.



혹자는 이런 연성화된 지식을 경박단소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 말도 타당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지식이 먹히는 구조부터 이해해야 한다. 지금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일을 해결한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어 불안해하는 이들 스마트폰 세대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고 있으며 직접 통화하는 것보다 문자로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따지면 문자를 쓰는 양도 엄청나다. 이러한 세대들에게 ‘팟북’이 인기 있다는 것은 이들이 지금 발 디디고 있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지 시작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팟북’은 스마트폰 세대에게 매우 적합한 책이니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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