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사람은 먹을 것 없이는 살 수 없다. 멜서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러므로 인류가 가진 여러 가지 악덕, 즉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재난이 인구를 감소시키지 못할 경우 자연이 가진 최후이자 가장 끔찍한 인구 억제 수단인 기근이 찾아올 것이다.”
멜서스는 이런 반응을 미리 예상했음인지‘인구론’의 초판을 익명으로 펴냈고, 몇 년 뒤에 출간한 재판부터는 과격한 표현을 많이 없앴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도“참혹한 질병과 기아를 예견한 불길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구 증가가 사회 발전의 장애로 인식되는 사고의 틀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유령이 완전히 상반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다니고 있다. 인구 감소로 인해 국가의 미래가 암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저출산은 재앙”이라는 말인데, 몇 년 후에는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인구 절벽이 올 것이라는 섬뜩한 표현까지 뒤따른다. 사실 일본과 서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한참 전부터저출산 문제가 제기돼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들어 부쩍 그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작년도 출생아 수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0년 이래 두 번째로 적은 43만5300명이었다.102만5000명에 달했던 1971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인 합계출산율은 1.21명으로 1971년의 4.54명에 비해 4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저출산은 생산인구의 감소를 가져와 경제 위축을 야기하고 이는 국가적인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정부는 그래서 2005년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어 2006년부터 8년간 출산장려금과 보육비 등으로 무려 66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그 결과가 고작 이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인구가 늘어나야 꼭 좋은 것일까? 가령 부동산 문제만 해도 젊은 세대가 증가해 주택 수요가 늘어나면 집값은 오를 것이고, 그만큼 이들의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인구 증가는 또 세계적인 차원에서 자원 사용을 늘릴 것이고 환경 오염도 가중시킬 것이다. 에너지 가격의 폭등과 자원 고갈은 물론 지구 온난화 문제도 더 심각해질 것이다.
사실 출산율 저하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기인한다. 예전에 농촌에서는 자식이 많을수록 일손이 불어나 수확량도 늘어났다. 자녀가 곧 재산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노후 대비도 자식에 의존해야 했으므로 자녀가 많을수록 유리했다. 그러나 도시화된 현대 사회에서 자식은 의무이자 부채다. 교육비 부담은 커졌지만 핵가족화로 노후 대비는 따로 해야 한다.
#그리고 자녀의 삶보다 자신의 삶을 더 중시한다. 종족 보존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저출산은 패러다임의 변화다. 재앙이 아니다.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 무조건 많고 커야 좋은 건 아니다.
경제학이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으로 불리게 된 것은 멜서스의 우울한 예측 때문이었다. 하지만 멜서스의 예측은 틀렸다. 멜서스의 유령은 이번에도 기우(杞憂)로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