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과장님, 접대한도 100만원 남았습니다"

머니투데이 세종=박재범 기자, 이승현 디자이너 2015.03.05 05:37
글자크기

김영란법 이후 세상. 가상 '김주사앱'열어보니..

"김 과장님, 접대한도 100만원 남았습니다"


2016년 12월. 조용한 연말이다. 들뜬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부처 김이박(가명) 과장은 스마트폰을 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학 친구들과 연말 모임을 갖기로 한 날이다. ‘김주사앱’을 실행, 식당명을 넣어본다. 광화문 인근 처음 가보는 집인데 ‘녹색 불’이 붙어있다.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 곳이란 의미다.

모임을 준비한 친구 녀석도 김주사앱을 통해 사전에 알아봤을 거다. 오늘 모임 참석 멤버는 모두 6명이다. 줄곧 5명이 모였는데 오늘 새 친구가 추가됐다.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시중은행 차장이다. 김주사앱 ‘인물관리’에 들어가 친구 이름과 직책을 써 넣는다. 업무 연관도가 80%로 나온다. 경제부처인 탓에 대기업이나 금융회사쪽 친구들과 업무연관도가 매번 높게 나온다.



"김 과장님, 접대한도 100만원 남았습니다"
정작 그들이 하는 일을 하나도 모르는 데 말이다. ‘그 친구도 앱을 실행해 내 이름을 입력해 놨겠지…’ 웃음이 나온다. 분기에 한번꼴로 만났는데 올해 세 번의 만남은 시내 한정식집에서 했다. 사업을 하는 친구 둘이 번갈아 냈다. 친구끼리 모임이지만 쓴 비용을 그날그날 앱에 저장해 둔다. 친구로부터 ‘얻어먹은 밥값’을 그래프로 확인하니 기분이 묘하다. 오늘 모임에선 ‘더치 페이’라도 해야할 것 같다.

한창 다니던 유명 한정식집 옆을 지나다보니 불이 꺼져 있다. 연말이면 예약하기 힘든 곳이었는데 최근 폐업 선언을 했다. 권리금까지 포기하고 처분하겠다는 데도 임자가 나타나지 않는단다. 식당, 골프장 등 죽을 쑤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달라질 접대 풍속도에 대비, 저가 컨셉의 식당이 대거 문을 열었지만 파리 날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김영란법 대상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아예 문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무실 저녁 배달 서비스가 그나마 자리를 잡는 듯 하다.
"김 과장님, 접대한도 100만원 남았습니다"
식당에 도착하니 한 명이 더 와 있다. 친했지만 최근 왕래가 없던 대학 선배다. 우연히 합석하게 됐단다. 명함을 받자마자 앱을 열어 두드린다. 업무연관도 99%. 후배들한테 저녁 한 끼 사겠다며 비싼 메뉴를 외친다. 술값까지 하면 당초 생각했던 금액을 훨씬 넘는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도 마음이 무겁다. 우연히 합석한 식사 자리에서 접대를 받은 공직자가 김영란법에 걸린 사례가 떠올라서다. 최소한 밥값은 자신이 지불했어야 한다는 게 김주사앱의 해석이다. 물론 '김주사앱'의 해석일 뿐 주무부처나 법원이 공식적으로 설명한 적은 없다. 한정식값 5만원을 내고 일단 영수증을 받았지만 개운치 않은 이유다.



오늘 밥값과 술값이 얼마였는지 선배에게 물을 수도 없다. 그 선배를 안 만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집에 오는 택시 안에서 김주사앱을 연다. 선배 이름을 찾아 접대한도 전액 사용을 입력한다. 그 선배로부터 전화나 메시지가 올 때마다 접대한도 소진 상황이 뜰 거다.

잘못 터치해 ‘긴급’ 방이 열린다. 비밀번호를 누르니 ‘배우자 신고’ 페이지가 뜬다. 이 기능을 사용할 날이 있을까. 차갑고 무서운 사회다.

"김 과장님, 접대한도 100만원 남았습니다"
"김 과장님, 접대한도 100만원 남았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