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예산 개혁'…원희룡 "될 때까지 한다"

머니투데이 하세린 기자 2015.02.12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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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생활 바꾸는 정치로-지방자치 광역단체장에게 듣는다]④ 원희룡 제주도지사

원희룡 제주지사가 제주도청 도지사실 벽면에 있는 책장을 뒤로 하고 서 있다. 사무실에는 커피기계와 제주도에서 생산된 각종 차들이 준비돼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원희룡 제주지사가 제주도청 도지사실 벽면에 있는 책장을 뒤로 하고 서 있다. 사무실에는 커피기계와 제주도에서 생산된 각종 차들이 준비돼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고향인 제주에 내려와 도지사를 맡은지 8개월째.
'소장파' '쇄신파'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원희룡 지사는 이곳에서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온 '불합리'와 쉽지 않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제주도청 2층의 도지사실은 응접실부터 흔한 관공서와 달랐다. 검정 소파 혹은 딱딱한 나무의자에 사각 테이블 대신 실내 전체를 둘러싼 라운드형 흰 소파에 원색의 철재 소형 탁자들이 놓여 있었다. 집무실에는 회의를 할 수 있는 Y자형 목재 책상이 사무용 책상을 대신했고, 한켠에는 현무암 돌담, 더치커피 머신이 놓여 있었다.



이같은 '소통'의 공간을 통해 귀를 열고, 트레이드마크가 된 사람 좋은 웃음으로 지역민들을 맞고 있는 그이지만, 개혁에 있어서는 양보할 수 없는 단호함을 보였다.
"될 때까지 하는 거죠."
그는 도의회와 '예산 전쟁'을 치르고 있다. 도의원들이 민원성 사업에 쓰일 의원사업비를 충분히 편성해주지 않았다며 도 예산을 대규모로 삭감하면서 촉발된 사태다.

도와 의회가 계속 충돌하면 행정공백이 올 수도 있지 않느냐는 우려에 대해선 "도의원들의 지역 민원 예산의 공백이 있을 뿐이지 행정공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참에 도청도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필코 예산개혁을 이루기로 방향을 잡았다는 설명이다.



제주도청 응접실의 모습. 둥근 흰 소파와 띄엄띄엄 놓여있는 각양각색의 의자들을 배치해 창의성이 돋보인다. /사진=머니투데이제주도청 응접실의 모습. 둥근 흰 소파와 띄엄띄엄 놓여있는 각양각색의 의자들을 배치해 창의성이 돋보인다. /사진=머니투데이
제주도청 도지사실 한켠에 놓여 있는 각양각색의 의자들. 뒷 벽면에는 제주도를 상징하는 현무암 돌담이 쌓여 있다. /사진=머니투데이제주도청 도지사실 한켠에 놓여 있는 각양각색의 의자들. 뒷 벽면에는 제주도를 상징하는 현무암 돌담이 쌓여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협치'를 모토로 내걸었다. 도 의회 의장은 새누리당 소속이다. 그런데도 협력이 잘 되지 않나
▷의회가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누려왔던 권한, 이런 것들에 대한 집착이 정당이라는 정체성보다 훨씬 강한 것 같다. 아무튼 (과거의 잘못된) 관행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안된다.
서로 타협과 양보를 해야 하는 문제라면 당연히 양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건 원칙의 문제다. 도지사가 동의를 안하면 예산 증액을 못하게 돼 있는데, 그것을 반협박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증액시키는 관행은 바꿔야 하는 것이다.

-불협화음이 나는 것 자체가 정치력이 부족한 것이라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서로서로 나눠먹고 관행을 인정해주면 조용할 것이다. 빚진 것 없이 지사가 된 내가 못바꾸면 영원히 못바꾸는 것이다. 제주도의 후손들을 위해서 누군가는 바로잡아야 하는데, 제가 그동안 제주도에서 생활을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당선시킨 것은 (이런 관행을) 바꾸라는 것이다.

-제주도는 매년 5% 이상 성장하고 인구도 한달에 1500명씩 늘고 있다. 2020년이면 70만이 될 전망인데, 이유가 뭔가
▷하나는 중국의 성장에 따른 투자가 중요한 변수이지만, 더 중요한 또 하나는 '제주다운'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문화이민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건 꼭 경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도 문화적인 현상이다. 청정자연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서 조용히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제주로 '문화이민'을 오는 것이다.

-그런 문화현상을 경제현상으로 이끌어내야 할텐데.

▷투자가 난개발로 가거나 균형이 깨지고 제주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게끔 이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환경을 보호하면서 청정에너지·IT·문화예술·헬스·교육 등 미래 지속가능한 가치를 갖는 투자로 우리가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제주도민들은 구경만하고 실제 소득으로 지역 경제에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게 제주도민들의 가장 큰 소외감과 불만의 원인이다. 투자의 지역경제에 대한 공헌도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가 행정이 가장 역점을 둬야 하는 부분이다.

-중국 카지노 자본의 득과 실에 대해 논란이 많다
▷투명성과 조세기여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 운영인력의 80% 이상을 도민으로 우선 채용하고 건설공사에 지역업체가 50% 이상 우선 참여하도록 하며, 지역 농수축산물에 대한 계약 재배와 지역 인재육성을 위한 산학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을 의무사항으로 조례화할 것이다. 지역과 함께 돈 벌 생각을 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개발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중국 자본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이미지도 있는데.
▷중국 자본만이 아니라 한국 자본 역시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이런 부분들이 제도화돼서 예측 가능하고 일관되게 할 것이다. 얼마전 중국에 다녀왔다. 중국이니까 불이익을 주는 식으로 행정이 이뤄지는 나라도 아니고 제주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납득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9일 제주도청 도지사실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9일 제주도청 도지사실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지사 재임 기간 중 꼭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공항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존 공항을 확충할지, 공항을 하나 더 만들지는 국토교통부 용역결과에 따를 것이다. 아울러 전기자동차 특구를 완성, 전기자동차 테스트베드(시험대)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것이다. 2030년까지 휘발유 자동차는 단 한대도 없게 한다는 게 목표다.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는 에너지 독립도시를 만드는 게 제주의 에너지 비전이다.

-그런 계획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보완입법이 이뤄져야 하나.

▷전기차 같은 경우는 보조금이 지금은 정액보조금이다. 보조금에 입찰을 부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보조금을 타서 전기차 살 사람이 입찰 금액을 써내게 하고, 돈을 많이 낼 수록 선착순으로 주면 되지 않겠나.
전기차의 소유권을 좀 유연하게 해서 자동차 자체를 소유할 필요가 없고 중고차 가격을 뺀 가격만 부담하되 배터리도 리스로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카셰어링으로 자기가 필요한 동안만 차를 쓰고 정산할 수 있는 식의 비즈니스모델도 있다. 이런 것을 활성화시키려면 사실 제도를 고쳐야 될 부분들이 꽤 많이 있다.

-경제 외에도 갈등 요인이 많다. 강정마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해군기지가 완공된 이후라도 강정마을 발전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미래 발전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해결이 되는 거다. 발전계획을 아직 마을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주민들과 도와의 신뢰관계는 많이 좋아졌다. 사면 등 화합을 위한 조치들은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중앙정치 이야기로 돌아가서, 쇄신파로 분류됐던 분들이 이젠 소장파가 아니라 중진이 됐고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정치지도자들이 됐다. 정치권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이들의 세력화가 중요한 정치 흐름이 될 것이라고 보는데.
▷어차피 세대교체라는 게 흐름으로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될 텐데 어떤 모양일지는 나도 궁금하다.
여야를 통털어서 정치 틀 자체를 바꿔볼 수도 있는 것이고. 욕심 같아선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면 각자가 속한 진영을 세대교체하는 걸로 가야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항상 여야를 넘어 서 있다. 어떤 때는 야당에서 나를 더 좋아하지 않나. 물론 자기네 자리를 안뺐는 그 선까지만 좋아한다(웃음).

-정치인 원희룡에게 제주지사는 어떤 의미를 갖나.

▷구체적인 행정이라는 책임 영역을 맡아서 잘해 낼수 있는지 어마어마한 시험대에 서 있는 것이다. 제주도 행정을 제대로 못하면서 다른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성립이 안되는 것이다. 종합행정이기 때문에 저한테는 많은 경험과 훈련의 기회가 되고 있다. 물론 고향에 대한 기여도 할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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