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 많이 뽑으면 선진기업? 더 중요한 건…

머니투데이 유효상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2015.02.0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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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교수의 직장남녀탐구]<38>기업의 남녀 비율

여직원 많이 뽑으면 선진기업? 더 중요한 건…


"이대리, 우리 회사가 앞으로 3년 이내에 여성간부의 비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고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대."
"정말? 그럼 앞으로는 여자 팀장들도 많아지고, 여성임원들도 많아지겠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지금 여자간부 비율이 5%밖에 안 되는데, 무슨 수로 3년만에 30%로 늘린다는 거지?"
"하기야, 우리 경쟁회사도 작년부터 여직원 비율을 50% 이상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10%도 안 된다고 하던데…"
"그나저나, 30%고, 50%를 떠나서 지금 있는 여직원들한테나 신경 좀 더 써주지…"

최근 들어 새로운 시장개척과 고객만족경영 등의 영향으로 여성 인력들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면서 여성의 채용비율을 높이거나 여성 간부의 숫자를 늘리려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근무하고 있는 여성 인력들에 대한 충분한 활용이나 평가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런 준비나 기존 조직문화에 대한 개선 없이 단지 여성 인력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일하기 좋은 기업', '여성이 일하기 좋은 기업', '여성권한 강화원칙 준수 기업' 등 많은 기업들이 조직문화를 글로벌 선진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일하기 좋은 기업(Great Work Place, GWP)'은 미국의 로버트 레버링 박사가 20년간 기업현장연구를 통해 뛰어난 재무적 성과를 보이는 기업들의 특징을 정립한 개념으로, 전 종업원들이 자신의 상사와 경영진을 신뢰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에 자부심을 가지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터를 의미한다.



GWP는 국제 표준 평가 모델로서 '서로가 신뢰해야 한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신바람 나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즐겨야 한다'는 세 가지 요건을 갖고 있는데, GWP를 갖춘 회사가 그렇지 못한 회사에 비해 생산성이 월등히 뛰어나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50여 개 국가에서 이런 우수한 기업을 선정해왔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화학, KT 등이 선정된 바 있다.

여성 권한 강화 원칙(WEP, Women’s Empowerment Principles)은 유엔개발계획(UNDP)이 직장과 지역사회에서 여성의 권한 강화를 촉구하기 위해 만든 가이드라인으로, 전 세계적으로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경제 환경을 조성하고, 모두의 평등한 경제 활동 및 인권 증진을 위해 지정됐다. 이는 일과 삶의 '균형(Balance)'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통합(Integration)'을 추구하며 여성들이 일과 삶 중 어느 한쪽을 희생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WEP는 고위 임원의 양성평등 의식 확립,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대우, 모든 직원의 건강·안전·행복 보장, 여성의 교육·훈련·직업계발 증진, 여성 권한을 강화하는 사업 개발 등을 주요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 50여 국가에서 800곳이 넘는 기업이 서명하였고, 한국에서는 풀무원, 유한킴벌리,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11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선진화된 조직문화를 벤치마킹 해 일하기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고 여성인력들에 대한 배려에 대해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단지 구호에만 그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외적인 홍보수단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전 세계 14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발표한 '2014년도 글로벌 성 격차(Gender Gap)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성 평등지수에서 142개국 가운데 117위를 기록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는 111위였던 2013년보다 순위가 더 떨어진 것이다.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및 기회는 124위를 기록해 가장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여성 대통령 시대에도 좀처럼 남녀간 성 격차가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무조건 남녀의 비율을 맞추려는 노력보다 남녀를 떠나 조직을 위해 어떤 인력을 채용하고, 키워야 하는가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물론, 단순히 여성 인력이 많은 것이 선진기업이란 착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여성인력이 없이도 회사의 실적이 극대화 될 수 있다면, 단지 여성의 비율을 구색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결과나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여성인력의 필요성과 남녀의 협업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모든 회사들이 여성이 조직에 기여하는 독특한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남자들을 교육시키고, 남자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 수 있도록 여자들을 학습시키는 일이 선행돼야만 한다. 기존의 남성중심의 조직문화를 과감히 탈피해 남녀가 모두 일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남자와 여자는 똑같지 않고, 꼭 똑같아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여자가 남자처럼 행동하거나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며,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과 성취감, 그리고 남녀평등으로 가는 진정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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