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틱, 택, 톡]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스타뉴스 김재동 기자 2015.02.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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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굿네이버스 캡처/사진= 굿네이버스 캡처


“선생님 이거 집에 가져가도 돼요? 동생이랑 집에서 나눠먹고 싶어서요” 브라운관 밖으로 흘러나오는 아이의 목소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직은 겨울날 초저녁 퇴근길 지하철역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박스위로 떨어져 내리는 생기발랄한 웃음들을 지켜보는 낡은 운동화 한켤레는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옷맵시를 고쳐주겠노라고 눈아래로 고개 숙인 아내의 정수리. 아, 고운 갈색의 염색을 무참하게 밀어내며 소복히 올라오고 있는 하얀 머리칼들, 그 치부가 들킨 줄 모른 채 “칠칠맞긴” 가볍게 타박하며 새초롬 흘기는 눈초리에 새겨진 주름이 눈에 들어올 때, 그런저런 심란함에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 역사를 두 계단씩 짚어 오르다 삐끗해버린 무릎의 통증이 눈물을 쏙 뺄 때, 이내 절룩이는 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서선 다행히 후배가 선물한 호랑이 고약이 있어 바지를 걷어 올리고 듬뿍 바르는 중 “왜 그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2월 2일 있었던 새정치 민주연합 당권주자들의 모방송 TV토론. ‘비열한 룰변경’, ‘저질스런 흠집내기’, ‘도대체 여기서 왜들 이러세요’ 란 지리멸렬한 도돌이표의 향연. 민망한 헛기침과 나가버리겠다지만 나가진 못한 채 짓는 울고 싶은 표정. 어쨌거나 끝장은 보자는 결의들이 난무할 때. 아, 그들은 민주를 위해 싸웠던 동지였고 정국을 함께 운영한 파트너였고 다시 정권교체에 힘을 합하기로 맹약한 사이였던 것이다.

그에 앞서 1월 27일 엔씨소프트의 대주주인 넥슨이 지분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 공시했을 때. 그래서 새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정주 넥슨대표의 이름이 인터넷에 회자됐었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1년 선후배 사이로 제각각 젊음을 바쳐 이제는 존경받을만한 부유한 기업주가 되었고 비록 무산됐지만 세계적인 게임회사 EA를 인수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도 했던 ‘동지’가 이제는 서로 내민 손을 거두고 아예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 한 태도를 취하고 있구나 느꼈을 때.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증세 없는 복지’가 여당대표와 신임 원내대표의 입에서 부정당할 때, 1%대 주택담보대출을 마련할 테니 많이 많이들 집을 사라고 정부가 부추기는 모습을 지켜볼 때,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축소수사에 참여했던 전직 검사 박상옥씨가 대법관 후보에 올랐단 소식을 들었을 때, 함께 검사로 수사에 참여했던 안상수 창원시장이 회고록에서 축소수사를 지시한 외압이 있었음을 증언했음에도 외압이 있었는지 몰랐었다고 대꾸할 때. 결국은 "당시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을 때.

전임 대통령이 회고록을 썼단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내용이 자화자찬과 변명으로 일관됐음을 확인했을 때, 이를 두고 한 방송에서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매를 스스로 번 것’이라고 촌평했을 때, 그가 이명박 서울 시장 당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했으며 한나라당 시절 “난 이명박의 사람”이라고 공언했었음을 확인했을 때, 그리고 실패한 정권인 이명박 정권의 탄생에 관여한 죄로 지금은 회고록이 아닌 참회록을 쓰고 있다고 밝혔을 때,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 이러고들 있고만 있는 이 나라의 리더들을 볼 때, 생동하고 약동하는 봄이 입춘을 지나 이미 옆에 와있는데도 봄인 것 같지 않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싯구를 인용해야 하는 지금은 나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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